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18시 15분

누구나인문학

12월 21일 영화 <송환>

기록영화 <송환>에서 읽어야 할 몇 가지 맥락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 큰 사전>에는 '송환'의 사전적인 의미를 "도로 돌려보냄"이라고 밝히고 있다. 보스턴과 뉴욕에서 출간된 <웹스터 사전 II>는 '송환 repatriation'을 "출생국이나 시민권을 가진 나라로 복귀시키거나 돌려보내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언제나 우리는 제대로 된 우리말 사전 하나라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한국 기록영화 사상 최초로 2004년 '선댄스 영화제'에 진출하여 '표현의 자유상'을 받은 <송환>은 이미 지난해 '야마가타 국제 기록영화제'에 초청되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했고, 2003년 '서울 독립영화제'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이상 '야후' 기록 참조).

김동원 감독은 <바보선언>, <서울 예수>, <태> 등과 같은 영화의 연출 부문에서 영화 인생을 시작하였으며, 상계동 철거 현장을 목도한 이후 도시빈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기록영화 부문에 자신의 역량을 쏟아 넣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송환>의 첫머리에서 그는 "다큐멘터리가 세상을 구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회고한다.

지금까지 그는 <상계동 올림픽> (1988), <벼랑에 선 도시빈민> (1990), <행당동 사람들> (1994), <명성 그 6일의 기록> (1997), <한 사람> (2001) 등을 통하여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세상으로 내보냈다.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하여 김 감독은 대한민국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록영화 <송환>은 1992년 3월 7일 김동원이 비전향장기수 조창손과 김석형을 만나 서울의 달동네 봉천동으로 데려옴으로써 시작한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여전한 군사문화의 지배 아래 놓여있던 90년대 남한사회를 작가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모두가 과거를 반성하고 본업으로 돌아가자는 '고백'의 문학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음을 그는 밝힌다.

"잔치가 끝난 뒤"의 우울과 슬픔을 노래하는 시인의 정한이 "한 마디의 주민신고 나와 이웃 지켜준다"는 길거리 반공표어가 교차하면서 <송환>은 매우 빠르고 수월하게 10여 년 전의 시공간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그다지 길지 않은 그 시간대 속에서 우리는, 세상은, 그리고 세계는 얼마나 변해갔는지를 영화작가는 느릿느릿하지만 명확하게 포착한다.

2000년 9월 2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한으로 송환되고, 1년 후 조창손의 전갈을 받으면서 영화 <송환>은 두 시간 반 동안의 수많은 이야기와 인연과 관계들을 끝막음한다. 그 사이에 1993년 '리인모 노인' 송환, 1995년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석방, 2000년 6-15 남북공동성명과 같은 굵직굵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촘촘하게 <송환>을 관통한다.

기록영화 <송환>에서 김동원은 남과 북 어느 일방의 관점이나 주장을 옹호하지 아니하고, 가능한 중간자의 시선을 가지고 양자의 가능성과 한계를 지적하는데 진력한다.

예컨대, 남북한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본인 기록영화 작가가 북한의 악화된 식량문제와 그로 인하여 파생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이제 한반도 문제는 순전히 북한의 문제가 되었다"고 단언할 때조차도 영화작가 김동원은 자신의 고유한 시각을 포기하지 않는다.

<송환>은 우리가 오래도록 망각하고 있던 뜨거운 눈물을 저 바닥 모를 깊은 곳으로부터 퍼 올리는 데 완전히 성공하고 있다. 한겨울 추위로 얼어 터진 수도꼭지에서 수돗물 흘러나오듯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객석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때문이며, 나 또한 사적인 욕망으로 땟국 절은 내면을 시원한 눈물로 말끔히 청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 8-15 광복절 특사로 43년 10개월 만에 자유로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김선명의 파란만장한 사연이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와의 만남 장면에서 펼쳐질 때 어찌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겠는가! 아흔 살 노모의 얼굴을 부둥켜안는, 칠순을 바라보는 불효자의 비통한 얼굴을 어떻게 우리가 눈물 없이 똑바로 들여다볼 수 있단 말인가!

"니가 선명이냐?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내 말 들었으면 이렇게는 안 됐을 텐데..."

<송환>에서 김동원은 이런 비극적인 장면뿐 아니라, 비전향장기수들의 송환으로 야기되는 또 다른 이산가족의 창출과 남한 내부의 복잡한 사회-정치적인 맥락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31년을 복역하고 석방되었다가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던 신인영은 그 어머니를 남겨두고 북송 길에 오른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던 아흔 넘은 노모를 남녘에 두고 북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 했던 그의 흉중에 교차했을 만감을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송환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그의 노모 또한 같은 해 세상과 작별했다.

비전향장기수들을 오랫동안 보살펴왔던 '민가협'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눈물로 그들의 장도를 전송하는 장면은 이산과 이별의 아픔을 다시 생생하게 살려냄으로써 기록영화의 본래적인 속성을 최고도로 발현한다. 통일 이후의 만남을 기약하는 그들의 꿈이 과연 꿈으로만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그것의 실현이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질 것인지, <송환>은 묻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김동원은 매우 정확하게 그리고 통렬하게 우리 사회의 내부 문제를 짚어버린다. '납북자가족협의회'로 대표되는 또 다른 이산가족들의 아픔과 울부짖음과 물리적 폭력을 영화작가는 아직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를 후벼파듯이 그려낸다.

과연 우리 사회는 흔쾌하게 '송환'을 결정하고 실행할 만큼 성숙하였는지,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상호주의' 주장에 대하여 얼마나 설득력 있는 대안을 준비하고 있는지, 영화작가 김동원은 정면으로 묻고 있다.

지속되고 있는 이산과 별리(別離)의 고통, 남한 내부의 아물지 않은 생채기들, 붙박이 가구처럼 여전히 우리 곁을 떠도는 강력한 반북 이데올로기와 흡수통일에 대한 야망이 <송환>에 담겨있다. 동시에 <송환>은 그런 난관을 뚫고 나아가야 할 우리의 길, 저 이름 없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인간적인 애정, 언젠가는 도래할 통일의 날에 대한 열망을 담아내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기록영화 <송환>은 그들을 보냈음에도 우리는 그들을 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노년의 그들과 조속하게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희구하는 것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의 시구 "님은 갔습니다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를 반추하면서 나는 님들과의 뜨거운 재회를 열망하는 우리 시대의 감동적인 기록영화 작가 김동원의 애틋한 바람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