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올해 초, 경북에서 난 산불은 주민 생계와 농촌 마을의 미래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입자라는 이유로 매우 낮은 수준의 지원을 받은 이재민들은 복구의 출발선에 서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산불 피해 지원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합니다.
김서현 기자가 보도합니다
◀ 리포트 ▶
안동시 남선면 갈라산 자락의 산골 마을 사붓골.
산불 이재민들의 임시주택 옆에 비닐하우스 한 채가 마련돼 있습니다.
겉은 소박하지만 안에는 평상과 싱크대, 냉장고, 곧 김장할 배추까지···없는 게 없습니다.
사붓골의 가장 젊은 주민, 62살 최미영 씨가 남편과 직접 만든 동네 사랑방입니다.
산불로 마을이 폐허가 되고, 좁은 임시 주택 안에서 어르신들이 큰 상실감에 빠지자, 최 씨 부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두 달 가까이 끼니를 대접하며 이웃 간 마음을 달랜 겁니다.
◀최미영 안동시 남선면▶
"'어르신들, 우리 이미 이런 거 우리끼리 마을에 저렇게 밥도 먹고 같이 지냅시다.' 어르신들 모여서 제가 칼국수도 같이 밀어서 칼국수도 해 먹고 제가 고기 사서 '다 오세요. 소주 한잔합시다' 해서.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아. 안 그러면 내가 더 힘들어. 다들 우울증에다가 사람들 다 멍해요. '아지매, 뭐 하노'하면 '어? 어?' 이럴 정도로."
최 씨 역시 산불 이재민입니다.
갈라산 등산객들 사이에 입소문 난 맛집 사장으로, 식당은 멋진 정원과 담금주 컬렉션을 자랑했습니다.
비록 10년 전 남의 건물에 세 들어 시작한 식당이었지만, 지난 9월쯤 완전히 인수하기로 약속도 해뒀습니다.
하지만 산불로 10년의 노력이 잿더미가 됐습니다.
◀ 최미영 안동시 남선면▶
"그 집을 제가 산다고 열심히 꾸며놨어. 주인도 저희에게 판다고 했고. '제가 돈 모이면 이거 집 삽니다.' 주인도 그러니까 '사장님 살 집이니까 예쁘게 꾸미세요' 해서 돈 버는 족족 집을 꾸민 거야."
최 씨는 건물주가 아닌 세입자였기 때문에 식당이 불타도 받을 수 있었던 지원금은 불과 600만 원, 그러니까 최대 지원금 1억 2천만 원의 5%뿐이었습니다.
새 건물을 짓기엔 터무니없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정든 마을과 식당을 떠나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식당이 있던 땅을 인수하고 은행에서 건물 지을 돈을 대출받았습니다.
◀ 최미영 안동시 남선면▶
"일단은 땅이 있으니 가게를 지어야 먹고 살 거 아닙니까? 이미 몸이 망가진 이상 딴 일 못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거(대출) 받아서 시작을 했어요. 시작하니 처음에는 (건물)견적내니 2억 9천, 2억 7천, 3억 얼마씩 나오는 거야."
건축 자재부터 하나하나 사서 나르고, 직접 시공하기 시작한 게 지난 9월.
완공도 쉽지 않은데 대출 이자와 보험료, 생활비, 치료비까지··· 조금씩 완성되는 건물을 보며 드는 감정은 희망보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큽니다.
산불특별법 시행령을 통해 세입자 사각지대가 해소되고 지원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 "부도가 난다"고 최 씨는 말합니다.
◀ 최미영 안동시 남선면▶
"일부 이 빚 반만 갚아줘도 좋게 살아갈 것 같아. 우리도 터무니없이 나라에 내놔라 내놔라, 억지인 줄 알아요. 억지인 줄 알지마는 어떡합니까? 매달릴 데는 나라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불낸 그 사람한테 매달리겠습니까? 진짜 좀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지금 여기서 저거 하다가(집 짓다가) 못 지으면 저는 완전히 부도난 거예요. 2억 원씩 빚졌잖아. 땅은 내주고 나는 맨몸으로 나가야 해."
산불은 주민의 생계를 위태롭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소규모 농촌 마을의 존속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붓골이 자리한 갈라산은 산불로 풍광을 잃으면서 등산객 발길도 끊겨, 마을의 정체성마저 잃게 되는 게 아니냐고 주민들은 걱정합니다.
◀이원기 안동시 남선면▶
"안동 시민이 여기 다 올라가서 등산을 하고 이랬는데 이번에 불이 나고부터는 이게(등산로가) 폐쇄가 돼 버렸어요. 그러니 앞으로 이제 이 사붓골이라는 동네가 없어지는 거지, 결국은. 안 그렇겠어요?"
MBC 뉴스 김서현입니다. (영상취재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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