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정부가 대구 출신 예술가인 이상춘 선생에게 독립 유공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대구 출신 예술가 가운데는 이육사와 이상화에 이어 세 번째인데, 대구 문화예술계의 경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태우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1910년에 대구에서 난 이상춘 선생은 1930년대에 예술로 일제에 저항합니다.
1933년 2월 21일 동아일보는 이상춘 선생이 연극단 '신건설'을 통해 서울에서 사상 선전을 목적으로 연극단을 활용했다는 내용을 다룹니다.
1934년 11월 23일 신문에서도 연극단체를 통해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춘 선생은 이 때문에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 이상 고초를 겪었습니다.
연극만이 아니라 미술을 통해서도 일제에 항거한 이상춘 선생.
일제가 주도한 조선미술전람회에 참여하지 않고 '영과회'란 조직을 만들어 저항합니다.
◀김기수 공간리상춘 대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서 저항하고 조선의 해방, 식민지 해방을 위한 미술을 주도해 온 거죠."
회화와 판화, 전시 비평,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남은 작품이 적고 미술계의 평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김기수 공간리상춘 대표▶
"대구 미술이 이상춘, 이쾌대, 이인성 같은 다양한 성향을 갖고 있는 미술가들이 활동했다는, 근대 미술의 풍부한 저력을···"
정부는 27살의 나이로 1937년에 요절한 대구 출신 예술가인 이상춘 선생에게 독립 유공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습니다.
유족을 찾고 그를 기리는 일은 앞으로 대구시와 시민의 몫입니다.
MBC 뉴스 이태우입니다. (영상취재 이승준, 화면 제공 대구예술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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