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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지역방송의 생존과 미래를 위한 길은?···"지역 공영방송을 '민주주의 SOC'로 재건하라"

심병철 기자 입력 2025-10-15 23:31:14 조회수 28

"지역방송의 위기는 단순한 미디어 산업 쇠퇴가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간접자본(SOC)의 붕괴이자, 풀뿌리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국가적 위기입니다."

2025년 김대중 평화회의 주간(9월 26일) 개최된 특별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내놓은 진단입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참여·분권·균형' 철학을 지역 민주주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이번 세미나는 지역 공영방송 존립 위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깊은 구조적 모순을 드러냈습니다.

지역 공영방송의 붕괴가 단순한 미디어 산업의 위축을 넘어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국가적 위기임이 부각된 것입니다.


'삼중고'에 갇힌 지역방송···"내부 식민지화" 심화
현재 지역 공영방송은 인구 감소, 지역경제 침체, 광고시장 축소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로 인한 기능 약화는 지역민의 알 권리 침해와 지방 권력 감시 기능 마비로 직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일부 권역이 이미 '정보 불균형'을 넘어선 '뉴스 사막(News Desert)' 단계에 진입했다고 경고했습니다.

참담한 제작 환경···"생수통도 아껴 쓰자"
관련 업계 조사에 따르면, 지역방송의 시간당 평균 제작비는 서울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런 재정 압박은 취재 범위 축소, 연속보도 단절, 기자의 일인다역 구조 만성화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습니다.

서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안동지부장은 "사무실 생수통 교체도 비용 부담이라며 줄여 쓰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라며 극심한 내핍 경영 실태를 전했습니다.

"비수도권은 내부 식민지"···구조적 원인 진단
발제자로 나선 주재원 교수(한동대)는 위기의 근본 원인을 수도권 집중 구조에서 찾았습니다.

"지방은 수도권으로 재료, 상품,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원인 젊은 노동력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내부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비수도권 거주 자체가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는 현실이 지역방송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주 교수는 "서울이 기득권을 놓지 않는 이상, 지역은 결국 고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수도권의 권한과 기득권을 지역으로 이양하는 구조적 해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감시 공백이 부르는 '민주주의 비용 전가'
지역 뉴스 공백의 피해는 추상적 가치 손실에 그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비용 전가'라는 구체적 재정 리스크를 유발합니다.

이종명 교수(충남대)는 미국 사례를 인용하며 "지역 언론이 폐간된 지역에서 지방채 조달 비용이 유의미하게 상승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지역 언론이 문을 닫으면 지방정부 감시 기능이 약화하고, 지방재정의 비효율성이 커지며 부패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지역공영방송 투자는 단순한 문화·복지 지원이 아닌 반부패 인프라 투자입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민주주의 SOC' 재정의 필요···3대 핵심 기능
세미나에서는 지역방송을 도로, 전력, 통신망과 같은 사회간접자본(SOC)으로 재정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종명 교수가 제시한 '민주주의 SOC' 개념은 정보 탐색 및 시민 참여의 거래비용을 절감하고, 그 편익이 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공공재적 속성을 지닌 인프라입니다.

지역방송은 또한 보편적 서비스 의무(USO)를 집니다.

재난 경보, 난시청 해소 등은 지리적 위치나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지역민에게 최소한의 서비스 접근권을 보장하는 의무입니다.

감시·공론장·연대의 3대 인프라 기능
민주주의 SOC로서 지역방송이 수행해야 할 핵심 기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감시 인프라: 지방정부와 지역자본의 부패·비효율 감소로 재정 효율성 증대

▲ 공론장 인프라: 지역 의제 중심 시민 참여 독려, 중앙정치 갈등 보도로 인한 집단 극화 완화

▲ 연대 인프라: 재난·기후 위기 시 보편적 서비스 의무 이행으로 주민 생명·재산 보호


지금 시점 무엇을 해야 하는가?

BBC 'Across the UK' 모델···탈-서울화 쿼터제 도입 시급
한국 지역방송 위기의 근본 책임이 '서울의 경영 정책'에 있다는 진단에 따라, 영국 BBC의 'Across the UK' 탈-런던화 전략이 핵심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BBC의 지역성 구현은 단순한 자율 경영 보장을 넘어, 법적 의무와 규제 장치를 통해 중앙의 기득권을 강제적으로 해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영국 통신규제기관(Ofcom)은 BBC 운영 허가를 통해 네트워크 TV 제작의 60%, 라디오 음악 지출의 50%를 런던 외 지역에서 제작하도록 쿼터제를 의무화했습니다.

핵심은 단순한 인력·자원의 '탈-이주'가 아니라, '사람뿐 아니라 권한과 결정(Authority and Decisions)'을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조직 재배치를 추진했다는 점입니다.

이 BBC 모델을 적용해 한국 공영방송 위기를 해소하려면, 네트워크 제작 예산 및 기획·편성 권한의 일정 비율을 법적으로 지역에 할당하는 쿼터제 도입이 시급합니다.

구체적으로 공영방송 일부 제작본부(다큐멘터리, 예능 등)의 지역 거점도시로 이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전체 제작 예산의 일정 비율을 지역 제작사·지역 PD 그룹에 법적 할당도 있어야 합니다.

'지역 민주주의 보도 서비스' 도입 필요
BBC가 주도하는 '지역 민주주의 보도 서비스'는 한국의 '감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실질적 모델입니다.

BBC는 연간 약 800만 파운드를 투자해 165명의 '지역 민주주의 기자' 고용을 지원하며, 이들은 지방의회 등 지역 민주기관에 대한 심층보도를 전문 수행합니다.

특히 이들 기사는 1,000개 이상 참여 뉴스 조직이 무료 사용할 수 있는 보도 풀(Pooling) 시스템을 통해 공유됩니다.

BBC 공유데이터 부서(SDU)는 데이터 기반으로 지역 불평등을 조명하고 파트너 뉴스룸에 데이터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중장기 로드맵 필요···법적 지위 격상부터 거버넌스 개혁까지
1단계로 법적 지위 확립과 안정 재원 확보가 필요합니다.

지역 공영방송을 민주주의와 지방균형발전의 핵심 SOC로 공식 재규정, '지역방송 지원 특별법' 제정·개정을 통한 명문화해야 합니다.

또한 안정적인 재원을 위해 방송 발전 기금 내 지역방송 전용 회계 분리 운영, 균형발전 특별회계 및 지방정부 연계 재원 확보가 필요합니다.

2단계로 거버넌스 개혁과 투명성 강화가 뒤따라야 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 내 지역방송정책국 신설, 공영방송 이사진에 지역 대표 인사 참여 의무화가 필요합니다.

또한 객관적 지역성 평가 지표 개발, 방송사별 '지역성 보고서' 정기 공개 의무화가 되어야 합니다.

3단계로 보도 인프라 확충과 콘텐츠 다양성 확보가 필요합니다.

권역별 지역 언론사 간 보도 공유 시스템 구축, 권역별 탐사 허브 상설화로 협력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제작 다양화를 위해 BBC 'Across the UK' 모델 추진으로 제작 예산 일정 비율의 지역 할당, 지역 언어·문화 다양성의 전국 방송 반영이 뒤따라야 합니다.


"과감한 결단만이 민주주의 완성의 길"
2025 김대중 평화회의 특별세미나는 지역 공영방송 위기가 단순한 산업적 쇠퇴가 아닌,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는 'SOC 붕괴' 현상임을 명확히 진단했습니다.

이 위기는 가장 약한 지역민들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으며, 방치할 경우 사회 전체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입니다.

핵심은 재정 지원에 앞서 중앙 공영방송의 권한과 결정 구조를 법적 의무를 통해 해체하고 지역에 이양하는 구조적 개혁입니다.

지역 공영방송에 대한 투자는 지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지방정부 감시를 강화하여 국가 전체의 민주적·재정적 효율성을 높이는 미래 전략 투자입니다.

정책 결정자들의 과감하고 단호한 결단만이 이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고 김대중 대통령의 참여·분권·균형 철학을 완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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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병철 simbc@dg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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