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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무엇이 지역 언론의 입을 막는가?···"내부 자율성 확립을 위한 법적 제도 시급"

심병철 기자 입력 2025-08-21 14:18:00 조회수 7


공영방송과 보도전문채널에 보도 책임자 임명 동의제가 법제화된 가운데 지역 언론에도 이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전국언론노조가 2025년 8월 20일, 대전 우송대학교에서 개최한 '지역 언론 연속 토론회-무엇이 지역 언론의 입을 막는가?'에서 언론인들과 언론 운동가들은 이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보도 책임자 임명 동의제, 민주적 편집국 운영의 최소한의 장치
전국언론노동조합 김도원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발제를 통해 이 제도가 언론의 내적 자율성을 확보하고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는 핵심 장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공정한 보도를 위해 많은 언론사에 도입된 이 제도는, 보도국장이나 편집국장 등 보도 책임자 임명 시 기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민주적 절차라고 말했습니다.

언론노조가 74개 지·본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는 이 제도의 확산 정도를 보여줍니다.

응답 언론사의 60.8%(45곳)가 임면·임명 동의제 등 보도 책임자 임명에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 소재 언론사(14곳)보다 지역 소재 언론사(31곳)에서 제도를 운용하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도 책임자의 독선적 운영을 막는 중간 평가제 역시 60% 가까운 언론사가 갖추고 있습니다.

김도원 위원장은 이 제도가 비단 언론노조 소속 언론사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동아일보가 노사 협약에 따라 편집국장 임명 시 기자들을 대상으로 신임 투표를 실시하고, 매일경제 또한 임명 동의제를 운영하고 있음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기업 경영의 자유를 옹호하는 경제지에서조차 이 제도가 민주적 편집국 운영에 필수적임을 인지하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2002년 5월부터 임명 동의제를 시행 중인 경인일보의 사례는 이 제도의 긍정적 효과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신지영 언론노조 경인일보지부장은 "제도 시행으로 노조와 편집국 조합원들이 사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저널리즘 품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후보자들은 투표를 통과하기 위해 민실위 강화, 취재 환경 개선 등 기자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법적 구속력 없는 제도···사측의 '꼼수'에 무력화
토론회에서는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제도가 있어도 사측이 시행을 거부하면 노조나 기자들이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웅 언론노조 MBC강원영동지부장은 광주MBC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2019년 임명 동의제를 포함한 단체협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MBC의 경우처럼 사측이 중간평가 발의에 응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지부장은 "사측이 단협을 일방적으로 거부해도 마땅한 제재 후속 조치가 없다"며 "임명 동의제의 법제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김도원 위원장 역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편성 규약으로 임명 동의제를 규정한 KBS, 단체협약에서 임면 동의제를 규정한 YTN의 경우 사측의 거부로 현재 제도 시행이 중단됐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SBS도 강력한 단체협약을 갖고 있었으나 사측의 파기 선언으로 결국 사장이 동의 대상에서 빠지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사측이 직제 개편으로 임명 동의 대상 직책을 없애거나, 중간평가에서 불신임당한 사람을 다시 임명하는 등의 '꼼수'를 동원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보도 책임자 임명 동의제가 법제화되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지역 언론의 내적 자율성을 위협하는 근본적 문제
이번 토론회는 지역 언론이 처한 위기 상황을 심도 있게 진단하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해법도 제시했습니다.

손주화 전북민언련 사무처장은 '지역 언론 보도의 내적 자율성이 중요한 이유'라는 발제를 통해 지역 언론이 직면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진단했습니다.

내적 자율성은 언론인이 소유주나 경영진, 조직 구조와 관행 등 내부 압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직업적 판단에 따라 보도 편집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손 사무처장은 지역 언론이 외부 권력(정치 권력, 자본 권력)과 내부 권력(사주, 경영진)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는 지방 권력과 언론이 밀착하거나 갈등하는 이중적 관계를 보이며, 광고 중단이나 정보 배제 같은 불이익으로 언론을 통제하려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역 유력 기업이 언론사 지분을 소유하는 경우, 사주의 개인 사업 이익과 편집권이 충돌하는 문제도 빈번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2019년 JIBS제주방송이 메인 뉴스에서 대주주가 운영하는 테마파크를 노골적으로 홍보해 방송의 사유화 논란을 일으킨 것을 꼽았습니다.

제주방송은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지역 MBC의 경우도 방송의 사유화와 사장에 의한 보도 통제가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대전MBC 사장으로 재임할 당시, 언론 사유화 논란이 있었습니다.

2015년 이진숙 사장은 지역성과 전혀 무관한 사안인데도 생뚱맞게도 이집트 대통령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로컬 뉴스 시간인데도 이진숙 사장의 친분 관계에 의한 인터뷰가 방송되어 물의를 빚은 것입니다.


"보도 책임자 임명 동의제 법제화, 만능 해법 아냐···내부 개혁부터"
이번 토론회는 보도 책임자 임명 동의제 법제화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능 해법'은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TBC 박영훈 지부장은 "생존 자체가 위기인 현실에서 프로그램 제작과 뉴스 보도의 기준은 결국 '돈이 되는가'로 귀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지부장은 "지방 권력과 언론사주, 간부, 기자로 이어지는 '원 팀 구조'가 권력 감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경영 위기와 미디어 다변화가 언론의 도덕 불감증에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일갈했습니다.

결국 "뼈를 깎는 내부 개혁과 철저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억압받지 않는 지역 언론은 요원한 얘기일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언론노조 지역신문노협 의장인 김용훈 경남신문지부장 역시 지역 언론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김 지부장은 "보도자료와 행사 기사에 대한 의존이 심화면서 탐사보도나 권력 비판 기사가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로 인해 지역민들이 지역 신문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중앙 언론이나 포털에 의존하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지부장은 "수익 다변화가 절실하다"며 "더 이상 지자체 광고나 향토 기업 홍보비에 기대지 말고 구독 회원제, 지역 데이터 서비스 등 새로운 수익 모델을 실험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단기적인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중장기적인 비전과 구조적 혁신을 이끌어내야 하는 경영진의 책무이기도 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미래를 위한 제언
이번 토론회에서 현업 언론인들과 언론 운동가들은 지역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크게 세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보도 책임자 임명 동의제, 편집위원회, 편집 규약 등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법제화하여 그 구속력을 높여야 합니다.

둘째, 시민 참여형 위원회를 강화하고, 참여 저널리즘을 도입해 시민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문화를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경영진은 단기 실적주의를 넘어 지역 밀착 콘텐츠 개발, 수익 모델 다변화 등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지역 언론의 내적 자율성은 단순히 언론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는 곧 지역사회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주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척도입니다.

지역 언론이 권력과 자본의 확성기가 되지 않고, 건강한 공론장을 형성하며 주민의 알 권리를 보장할 때 비로소 지역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제공 전국언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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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병철 simbc@dg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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