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8월 5일, 한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합천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한국의 히로시마'라 불리는 이곳에서, 원폭 투하 80주년을 맞아 2025 합천 비핵·평화대회가 성대하게 막이 올랐습니다.
대회 첫날인 8월 5일, 합천문화예술회관 강당은 숙연하면서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마셜제도에서 온 피폭 4세 베네틱 카부아 매디슨 씨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는 "핵무기로 인한 커다란 상실감과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문을 연 뒤,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의 핵실험장으로 사용된 마셜제도의 비극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그의 증언은 피폭의 아픔이 한 세대로 끝나지 않고, 대를 이어 전해지는 끔찍한 유전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습니다.
또한, 한국인 원폭 피해 2세 환우들의 삶을 조명하는 연극 '불새 80'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습니다.
이 연극은 일본 히로시마에서 피폭된 피해자의 후손들이 아픈 가족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원폭 피해자들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비핵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아냈습니다.
이러한 문화 행사는 단순히 슬픔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예술을 통해 치유와 화합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한반도에도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습니다.
당시 강제 징용 등으로 일본에 있던 한국인 약 7만 명이 피폭되었고, 그중 상당수가 합천 출신이었습니다.
원폭 피해자 단체들에 따르면 합천에 유독 피폭 피해자들이 많은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합천 출신의 한 기업가가 히로시마에 정착하면서 고향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고, 이를 이유로 자연스럽게 합천 사람들이 그곳에 많이 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온 피폭자들은 전쟁의 직접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방사능 후유증이라는 보이지 않는 고통과 사회적 편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합천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아픔의 기록이 서려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번 대회는 피폭 80년을 맞아 원폭 피해의 기억을 되새기고, 핵 없는 세상을 향한 평화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마셜제도, 타히티, 카자흐스탄 등 전 세계 각국의 피폭 생존자와 후손들이 대거 참여해, 핵 피해가 특정 국가나 민족의 문제가 아닌, 인류 공동의 과제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억과 기록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다
이번 대회의 슬로건은 '피폭 80년! 기억과 기록, 평화연대'입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는 것을 넘어, 그 기억을 올바르게 기록하고 미래 세대에 전승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대회 이틀째인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일인 이날에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위령각에서 원폭 희생자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인 '합천 평화의집'을 설립한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비롯해 합천원폭피해자지원회, 아시아평화여성, 생명평화아시아 등 평화와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여러 단체들이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세계 비핵 평화 선언'을 채택하며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조성하고,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연대를 강화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피폭 피해의 아픔을 환경·생명·평화로 승화
이번 대회는 피폭 피해라는 고유한 아픔을 넘어, 환경과 생명, 그리고 평화라는 더 큰 가치로 외연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대회에 참여한 '생명평화아시아'와 같은 단체들은 핵무기가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 전체를 파괴하는 위협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평화 운동이 단순히 전쟁 반대를 넘어, 환경 문제와 생명 존중의 가치를 포괄하는 통합적인 접근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합천은 이제 단순한 원폭 피해의 상징을 넘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통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를 이야기하는 중요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가 전 세계에 던진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과거의 비극을 잊지 않고, 그 기억을 기록하여 평화의 씨앗을 뿌릴 때, 비로소 핵 피해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합천에서 시작된 이 작은 울림이,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가 평화의 큰 물결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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