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운동가인 김창숙 선생 생가가 4월의 현충 시설로 선정됐습니다.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김창숙 선생은 1919년 유림단 독립 청원 운동을 주도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했습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스승인 이승희와 함께 을사오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 당시에는 전국단연동맹회 성주 대표로 활동하며 기금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김창숙 선생은 1919년 유림 대표 137명이 서명한 장서를 가지고 영문으로 번역해 파리강화회의와 각국 대사 등에 보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임시의정원에 참여했고, 1926년 의열단 나석주를 파견해 식민 수탈 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을 폭파하게 했습니다.
다음 해 병으로 상해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가 일본에 발각돼 징역 14년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병이 악화해 형 집행 정지로 출옥했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비상국민회의 최고 민중 지도자 등을 역임했고, 1946년에는 성균관대학교 건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초대 학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1951년 독재 정권인 이승만 대통령 하야 경고문을 발표했다가 부산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
김창숙 선생의 공훈을 기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고, 국가보훈부는 2012년 경북 성주군 대가면에 있는 생가를 현충 시설로 지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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