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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독립만세운동 당시 대구에서는
일주일 쯤 늦게 만세운동이 시작됐습니다.
3월 8일 처음 시작돼
두 달 가까이 이어졌는데요.
당시 운동을 주도한 주역들은
혈기왕성한 학생들이었습니다.
이상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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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옛 동산파출소 터에 세워져 있는
'대구 3.1 독립운동 발원지 표지석'
1919년 3월 8일 '대구 3.1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입니다.
(S/U) "현재 인교동 오토바이 골목으로 불리는
이곳은 100년 전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서문시장이 있었던 곳입니다.
일본은 3.1만세운동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1920년 서문시장을 지금의 위치로
강제로 옮겨버립니다"
천여 명의 시위대 속에는
계성학교,신명여학교,대구 고등보통학교,
성경학교 학생 수백 명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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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동 상임대표/독립운동 정신 계승사업회
"학생들이 선생님의 도움을 얻어서
이 장소까지 참여했고요.
청년 학생들의 어떤 혈기, 나라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는 그런 자각들이 학생들을
대거 참여하도록 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계성학교 학생들은
학교 아담스관 지하실에서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준비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대구의 3.1운동은 1919년 4월 28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210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고
916명이 다쳤으며 3천 2백여 명이
체포됐습니다.
체포돼 실형을 산 95명 가운데
학생이 56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가서
독립 만세운동을 계속 확산시키며
대구 경북 지역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했습니다.
MBC NEWS 이상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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