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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40대 여성이
45년만에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자신의 뿌리, 어머니를 찾고 싶어서 온 것인데,
친모는 이미 세상을 떠나 만나지 못했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기부금을 내놨습니다.
권윤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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홑꺼풀 눈을 가진 영락 없는 한국인 모습을 한
줄리아나 데이먼씨.
45년만에 자신이 태어난 고향, 대구 땅을
밟았습니다.
그녀는 1972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듬해 미국으로 입양됐습니다.
대학교수인 양부모 도움으로
소아과 의사가 됐습니다.
그러나 핏줄의 이끌림은 거스를 수
없었던 걸까요?
친부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남편 그리고 두 딸과 함께
처음으로 대구를 찾았습니다.
◀INT▶줄리아나 데이먼(1972년 대구 출생)
"양부모가 나이가 많이 드셔서 친부모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늙었을 때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요."
미국을 떠나기 직전,
대구시청에 친모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해뒀고
고향에서 처음 접한 소식은
친모가 자신이 입양되기 직전
숨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질환이 있던 어머니는 갓난아기였던
자신과 함께 거리를 떠돌다
대구시립희망원에 보내졌고,
5개월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은 미국으로 입양됐다는 겁니다.
또 여권에 기록된 '이대숙'이 아니라
'김노미'가 진짜 이름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INT▶대구시청 주무관
"예전에는 이런 기아 발생이 굉장히 많다보니까
하루에도 몇 건씩 있었는데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는 이 한 줄입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두 달 동안 머물렀던
대구시립희망원을 방문한 그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으로
어머니 이름 옆 '사망'이라는 붉은 글씨를
바라봅니다.
◀INT▶줄리아나 데이먼(1972년 대구 출생)
"슬프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비록 친부모를 만나지 못하고
다른 가족의 흔적도 찾지 못한 줄리아나 데이먼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며 희망원과 미혼모자 시설에
5천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INT▶줄리아나 데이먼(1972년 대구 출생)
"아주 적은 기부금이지만, 돈을 더 벌어서
기부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대구시와 강한
유대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주 기쁩니다."
1950년대부터 집계된
우리나라 공식 해외입양인은 16만여 명.
해마다 수천 명이 자기 뿌리를 찾으려고
한국을 찾고 있지만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어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MBC뉴스 권윤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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