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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물론 전국을
경악과 비통함에 잠기게 했던
대구지하철 참사가 일어난지
올해로 10주기를 맞았습니다.
대구문화방송은
수많은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가 남긴
상처와 교훈을 되돌아보는 기획뉴스를 마련해
오늘부터 연속으로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참사가 일어난지 10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그날의 아픔을 차마 지우지 못하고
가슴에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고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건협 기자가 참사 유족들을 만나봤습니다.
◀END▶
◀VCR▶
(지하철 참사 영상+싱크 20초)
병마에 시달리던 한 50대 남자의
방화에서 시작된 불길은 무려 192명의 사망자와 부상 148명이라는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장면 전환)
진눈깨비가 내리던 지난 4일,
73살 송춘녀씨는 언제나처럼
둘째 아들을 만나러 팔공산을 찾았습니다.
29살, 막 사회에 발을 내딛은
새내기 회사원이었던 아들의 시간은
10년 전 그날에 멈춰 있습니다.
◀SYN▶ 송춘녀/사망자 이 현 어머니
"에미 왔어요... 에미 왔다구요."
조그만 과일가게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넉넉치 않는 가정 형편이었지만,
대학 내내 장학생이었고, 어엿한 직장을 잡아 든든하기만 했던 아들.
◀INT▶ 송춘녀/사망자 이 현 어머니
"저녁에 가게 마치고 오면 집까지
한 200미터 돼요. 거기까지 나를 업고 와요.
내가 내릴라면 아니 우리 엄마 하루 해
욕 봤응께 애썼응께 내가 업고 온다고 그러고 댕겼어요. 그런 아들이 없어요. 그런 아들은
이 세상 주고도 못 사는 게 그 아들이에요."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병석에 누웠던 남편도
2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추모공원이 아닌 안전테마파크로 바뀌면서
제대로 된 이름을 찾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은
여전합니다.
◀INT▶ 송춘녀/사망자 이 현 어머니
"고인들을 위해서 온 국민이 여기로 공히
다 와서 참배도 하고 추모도 하고 애도도 하게,
이 공원을 제대로 바꿔주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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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의 윤 근 위원,
3남매의 아버지로
단란했던 가족의 가장이었던 그는
중앙로역 화재 참사로 딸을 먼저 보낸 아픔을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SYN▶ 윤 근/사망자 윤지은 아버지
"아... 딸래미야 내가 왔다..."
꽃다운 나이 23살, 대학원에 다니며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딸은
중앙로역 부근 학원으로 가다
불길 속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지난 10년, 유족들의 가슴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에다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데 대한
분노와 원망이 덧씌워졌습니다.
◀SYN▶ 윤 근/사망자 윤지은 아버지
"우리가 살아온 게 이거 거든요. 살아남은
우리가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이렇게 했는데...
부끄럽지 않으려고 우리 가족이 10년을
견뎌온 겁니다."
S/U] 누군가의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였던
희생자들은 이제 사진 속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참사로 떠나보낸 유족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안전해졌는지
참사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묻고 있습니다.
MBC뉴스 도건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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