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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대구읍성 실제 현판 7점 공개

윤태호 기자 입력 2012-11-28 15:52:13 조회수 0

◀ANC▶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 조선시대 고종 7년에
대구 도심에는 읍성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구읍성에 걸려 있던 현판 글씨를
탁본한 것으로 보이는 서첩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여]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직접 쓴 글씨로 추정돼
향토 사학계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윤태호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END▶

◀VCR▶

대구시내 한 고문서 경매장에 나온 서첩입니다.

'대원군횡서탑본첩(大院君橫書榻本帖)'

흥선대원군이 횡으로, 그러니까 가로로 쓴
글씨를 탁본으로 만든 서첩이라는 의미입니다.

안을 들여다봤더니,
모두 7개의 글씨가 나타납니다.

낙서루와 망경루, 동장대, 남장대 등
누각과 망루의 이름을 적은 겁니다.

낙서루는 대구읍성의 남문이었던
영남제일관의 2층 누각인데,
대구읍성에서 가장 상징적인 곳입니다.

나머지 이름도
대구읍성의 동쪽과 남쪽, 북쪽에 있던
누각과 망루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각 글자 왼쪽 하단에는 '대원군장이라고 해서
대원군이 직접 찍은 것으로 보이는 낙관이
찍혀 있습니다.

◀INT▶조현제 대표/'한'옥션
(고미술품 경매)-하단
"대원군이 직접 했다. 이 글씨를 쓰고, 낙관을했다는 자료니까 아주 중요한 자료다. 대원군의 친필을 받아서 목각을 했다는 근거가 되는거다"

대원군은 고종 7년인 지난 1870년,
서구 열강의 침탈을 막기 위해
임진왜란때 파괴된 대구읍성을 중수하라고
지시했는데, 당시 이 글씨를 직접 써서
내려보낸 뒤 현판을 만들도록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현판을 만들자마자
탁본으로 떠 둔 것으로 추정됩니다.

◀INT▶남권희 교수/
경북대 문헌정보학과(하단)
"(대구읍성의) 위치가 만들어지고, 규모라든가
그런 것이 확정되면 아마 이런 현판이
(대구읍성이) 제 위치에 만들어져서 복원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현판 탁본이 최초로 공개됨에 따라
고증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지지부진하던
대구읍성 복원 사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을 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MBC뉴스 윤태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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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yth@dg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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