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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사에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일제 식민지시대
구미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였던 박상희 선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요.
좌익 활동을 했다는 편견 때문에
묻혀졌던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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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곱 남매 가운데 세째였던 박상희 선생은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했지만
1925년, 약관의 나이에 언론계에 입문해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지국장을 지냈습니다.
좌우합작 독립운동 단체인
신간회 선산지회와
선산청년동맹 설립에도
주도적으로 참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4차례나 투옥돼
결국 해방을 대구형무소에서 맞이했습니다.
해방 이듬해 대구 10월 항쟁 당시
곳곳에서 성난 군중들이 경찰서를 습격해
친일 경찰을 살해했지만
선산에서는 불상사가 없었던 데는
박상희 선생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INT▶ 박준홍/박상희선생 아들
"같은 민족끼리 살상이 일어나는 이런 일이
있어서 되겠느냐. 여러분이 당한 억울한 것을
내가 대표자로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돌아가라고 그렇게 설득을 하신 겁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선생은
진압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서 온
응원경찰대에 사살됐습니다.
일관되게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선생의 업적이 묻혀진 것은
좌익 활동을 했다는 편견 때문입니다.
학계에서는 그러나 선생이
오히려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고
간부로 활동했던 인민위원회도
좌익만의 단체는 아니었다고 지적합니다.
◀INT▶ 이윤갑/계명대 사학과 교수
"민주주의 국가면서 식민지 여러 잔재를
청산하고, 정치·경제·교육에서
균등을 실현하려는 방향이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만 참가했다고 보기 어렵다."
극단적인 반공노선을 걸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에
오히려 가려졌던 선생의 업적을
이제는 재조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고향 구미에서도 일고 있습니다.
◀INT▶ 조근래/구미경실련 사무국장
"박상희 선생은 일제 강점기 구미·선산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였다. 선생의 독립운동을
재조명하고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한다."
유족을 비롯해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은
올해 안으로 추모모임을 결성해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벌일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중부지사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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