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3일 오전 10시 40분쯤 대구시 북구 신천 침산보 부근에서 수달 한 마리가 자기 덩치보다 더 큰 잉어를 사냥하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잉어와 안간힘을 다해 잡으려는 수달의 모습이 인구 240만 명의 대도시 한복판의 하천에서 벌어지는 광경이라고는 믿기지 않습니다.
어미 한 마리와 새끼 세 마리가 함께 있다가 빤히 쳐다보는 것이 앙증스럽습니다.
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신천에서 수달의 이런 생생한 야생의 모습을 목격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신천 양쪽에 만들어진 보행로에서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는 시민들은 종종 이런 장면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5년 1월, 대구 시민들에게 처음 모습 드러낸 수달
신천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달이 처음 서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은 2005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구문화방송 취재진이 수성교 부근 신천에서 잉어를 잡아서 포식하고 있는 모습을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대구 시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신천은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생물학적 산소 요구량(BOD) 기준으로 5급수에 해당하는 오수가 흐르는 도심 하천이었기 때문입니다.
수달은 2급수 이상의 깨끗한 물에 사는 동물로 하천의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수달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천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시민들은 놀라움과 함께 환호를 보냈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1998년, 신천 수질 좋아졌지만···생태계 복원에는 부족
과거 악취를 풍겼던 신천 오염의 주된 원인은 유지수 부족과 오·폐수 유입이었습니다.
1959년 신천 상류에 가창 댐이 들어서면서 유지수는 급감했고 도시화로 신천 주변이 콘크리트로 덮이면서 유입되는 수량이 더욱 감소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하수처리시설이 제대로 안 돼 오수가 신천으로 그대로 유입됐습니다.
이런 신천에 1992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대구시가 하수처리장과 하수를 모으는 관로 설치를 끝내, 오수가 신천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은 것입니다.
1998년부터는 하수를 정화 처리한 물을 유지수로 쓰면서 수량이 많아지고 수질도 급격히 개선됐습니다.
그러나 생태계가 나아진 것은 수질 개선 때문만으로 보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신천에 오수가 유입되지 않고 수량이 늘어난 지 6년이 지났지만 생태계 복원 조짐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도 단순히 수질이 개선된다고 해서 생태계가 저절로 복원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2004년부터 물고기가 늘어나는 등 생태계가 급격히 좋아졌습니다.
신천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2003년, 태풍 '매미'로 초토화···모래·자갈 쌓이면서 오히려 생태계 복원
2003년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신천은 제방이 떠내려가는 등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상류에서 엄청난 양의 토사와 돌이 하류 쪽으로 떠내려가 쌓였습니다.
수해 복구에 9개월이나 걸렸고 준설작업은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이 기간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래와 자갈이 떠내려와서 쌓인 곳에서 수생식물이 뿌리를 내리며 군락을 이뤘습니다.
수생식물 군락지는 유속을 늦춰 수서곤충이 많이 모여들게 했고 당연히 이들을 먹이로 하는 물고기도 많아졌습니다.
모래와 자갈은 물고기 산란처로 이용되기 때문에 서식지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당시 취재진은 전문가들과 함께 수서곤충의 서식 상태를 조사했습니다.
모래와 자갈이 퇴적된 곳에서 깔다구과와 납짝하루살이, 등딱지하루살이 등이 관찰됐습니다.
그러나 모래와 자갈이 없는 곳에는 수서곤충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2004년 봄부터 신천에 물고기가 유독 많이 늘어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천에 수달이 서식하게 된 것입니다.
준설작업 멈추니···더 많은 수달 모습 보여
대구문화방송의 계속된 문제 제기에 따라 대구시는 신천에서 마구잡이로 이뤄지던 준설작업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하천 내 작은 섬인 하중도의 수생 군락지를 보호했습니다.
수달은 물고기를 사냥할 때를 빼면 하천 부근 수풀에서 몸을 말리고 쉬며 새끼들을 낳고 기르는 습성이 있습니다.
신천의 이런 변화는 더 많은 수달을 끌어들였습니다.
신천에 사는 수달은 얼마나 될까요?
대구시가 2018년 실시한 수달 서식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신천과 본류인 금호강 일대에 수달 24마리가 사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수달 분변을 수거해 DNA의 유전자형 및 성감별 분석을 통해 이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2015년 수달 서식 실태 조사에서는 DNA 검사 결과 신천에서만 모두 8마리가 확인되었고 최소 15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열다섯 마리중 수컷은 여섯 마리, 암컷은 아홉 마리로 조사됐습니다.
수달은 세 개 그룹의 가족 군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2018년 조사에서 수달 배설물 안에 있는 식이물 DNA 검사도 했습니다.
그 결과 수달은 22종의 어류와 4종의 조류, 5종의 양서류, 1종의 포유류와 1종의 파충류를 먹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2020년, 갑자기 바뀐 대구시 정책···잇따르는 수달 '로드킬'
신천에서 수달이 대구 시민들에게 자주 목격된다고 해서 그들이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신천에서 수달이 처음 서식이 확인된 2005년 이후 대구시는 꾸준한 수달 보호 정책을 통해 수달을 보호해 왔습니다.
하지만 2020년부터는 대구시의 정책이 갑자기 바뀌면서 과거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있습니다.
2021년 7월 10일.
야생동물 구조센터로 지정된 대구의 한 동물병원에 수달이 실려 왔습니다.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고 털은 말라버린 채 윤기를 잃은 수달은 북구 침산교 부근 도로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생후 4~5개월 된 아기 수달입니다.
동물병원의 원장인 최동학 대구·경북 야생동물 연합 대표는 "다른 장기나 다른 척추라든지 이런 쪽은 다 정상으로 봐서는 두개골 쪽이 교통사고에 의해서 두개골 함몰 때문에 얘가 사망했다고 봅니다."고 밝혔습니다.
하루 뒤인 7월 11일에도 침산교 부근 도로에서 수달 한 마리가 또, 로드킬을 당했습니다.
1주일쯤 전인 3일과 4일에도 신천 부근에서 수달 로드킬이 있었고 한 달 새 4마리나 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2018년 신천과 금호강 일대 수달 서식 실태 조사에서 확인된 개체 24마리의 1/6이나 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잇따라 일어나는 것일까요?
대구시, 수달 보금자리 '하중도' 밀어버려···다시 '인간' 중심 하천 관리 회귀
취재진은 신천에서 수달이 서식하기 가장 좋은 장소가 무참히 파괴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대봉교 부근에 있는 작은 섬인 하중도가 대구시가 하천 관리를 이유로 중장비를 동원해 밀어버린 것입니다.
이곳은 수달이 편히 쉬며 새끼도 낳고 돌보는 중요한 보금자리였는데 이런 천혜의 서식지가 2020년 11월 말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대구시는 2020년 신천 전역에서 이런 식으로 작은 섬이나 수변공간을 없애버렸습니다.
수달은 물론 새들의 삶의 터전이 없어졌습니다.
최동학 대구·경북 야생동물 연합 대표는 "준설 작업으로 인해서 수달의 주 서식지들이 다 파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얘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해야 하다 보니까 이런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고 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서식지가 훼손되자 수달들이 다른 곳을 찾아 이동하다가 로드킬로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구시 관계자는 "서식지 훼손이라면 저희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는데 수달 서식지이기 때문에 신천 자체에 대해서는 작업을 하면 안 된다, 그런 말씀이신지" 라면서 하천 관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2005년 신천에 수달이 출현하자 그동안 서식지 보존을 위해 작은 섬이나 수변공간을 잘 관리해 왔던 대구시의 정책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대구시는 그동안 수달을 '친환경 도시 대구'를 상징하는 소중한 존재라며 지금까지 수십억 원을 들여 서식 실태 조사와 보호 캠페인까지 펴 왔습니다.
수생태계와 인간의 공생을 선택한 것인데 최근 인간 중심의 하천 관리로 바뀐 것입니다.
지난 16년간의 대구시의 수달 보호 정책과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회복하기 힘든 비참한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수달이 신천을 찾아왔다고 환호했던 대구시민들은 이런 어처구니없고 반환경적인 대구시 행정 앞에 할 말을 잃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