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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탓에···" 장애 아동 가정, 대피소 떠나 차에서 밤 새

김서현 기자 입력 2025-04-21 07:30:00 조회수 2

◀앵커▶
4월 17알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북 산불 당시에도 장애인들은 여전히 체계적인 대피 매뉴얼 없이, 보호자와 이웃의 도움에만 의존해야 했습니다.

대형 재난 속에서 장애인들이 어떤 어려움과 소외를 겪고 있는지, 장애 아동을 둔 한 가정을 통해 들어봤습니다.

김서현 기자입니다.

◀기자▶
3월 22일, 의성 곳곳에 산불이 번지면서 주민들이 급하게 대피에 나섰을 때, 의성에 사는 송 모 씨의 가정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송00 장애아동 어머니▶
"집에 오니까 벌써 앞산에 불이 들어온 거예요. 이렇게 큰 산불은 처음이어서 허, 이렇게만 보고 있는데 우리 신랑이 빨리 나오라 그러고···"

남편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남았고, 송 씨는 발달장애가 있는 만 8살 막내아들을 포함해 어린 자녀 4명과 또 지체 장애가 있는 80대 시어머니까지, 식구 5명을 한 차에 태우고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대피소인 의성체육관에 도착했지만 밤이 깊어지자 체육관 안에 머물 수 없어, 결국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송00 장애아동 어머니▶
"'우리 애가 여기 들어오면 안 되겠구나', 시선도 그렇지만 우리 애가 좀 소란스러우니까 소리를 지르고 자폐이니까 '아, 못 들어오겠다' 싶어서" 

그날 밤, 결국 여섯 식구는 야외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몸을 구겨가며 잠을 청했습니다.

좁은 차 안에서 장애가 있는 아들과 시어머니가 과연 지낼 수 있을까, 남편과 집은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에 더해, 따가운 시선에 송 씨는 더욱 위축됐습니다.

◀송00 장애아동 어머니▶
"(대피소에서)이불 2개 들고 나오는데도 '어, 저 사람 이불 가져가네, 왜 가져가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어요.) 장애가 있는 식구가 있는 가족이 대피소에 갔다가 '아, 안 되겠구나'하고 돌아 나오는 게 아니고 '우리 집에 장애인이 있어요', '아,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이런 시스템이 됐으면 좋겠어요."

송 씨 가족뿐 아니라 장애인과 어르신들 대부분은 보호자의 도움이나 이웃의 호의 없이는 재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습니다.

◀정혜연 경북장애인부모회 의성군지부장▶
"(발달장애인은) 보호자 없이는 긴급상황에서는 대처 능력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그런 데 대한 긴급 재난안전문자라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무리 비상 연락망을 해도 보호자 말고는 발달장애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아무런 보호막이 없어요."

이번 영남권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31명. 

이 가운데 70대 이상 고령자는 18명으로 절반이 넘습니다.

이들 중에는 혼자 지내던 70대 지적장애인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숨진 사례도 있었습니다.

장애학계는 정부가 장애인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구체적인 재난 대응·대피 계획을 마련하고, 재난 대응 과정에서 장애인 피해 현황을 별도 통계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강민희 한국장애학회장(호남대 교수)▶
"취약계층의 유형별로 얼마나 위험에 많이 노출 돼 있고 그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거든요. 두 번 다시 이런 재난 앞에서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그냥 희생자들을 낼 수는 없다라는 생각으로 매뉴얼에서 그치지 말고 매뉴얼에서 한 단계 더 이행과 실행 작업을 거쳐서" 

무엇보다 이런 두려움과 소외를 다시 겪지 않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한 아이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송00 장애아동 어머니▶
"그래도 '아, 이런 친구들도 있구나. 아, 발달장애는, 아니면 자폐는 저렇게 행동할 수도 있구나' 그렇게만 좀 생각을 바꿔줬으면···"

MBC 뉴스 김서현입니다. (영상취재 배경탁, 영상편집 차영우, CG 도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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