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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의의 전당 국회가 총을 든 군인에 위협 받아"···조환길 대주교 성탄 담화문 발표

천주교 대구대교구장인 조환길 대주교가 지난 12·3 내란사태를 비판하는 성탄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조 대주교는 성탄절을 하루 앞둔 12월 24일 천주교 대구대교구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2024년 교구장 성탄 담화문'에서 "지난 1년 우리 사회는 대립과 갈등의 시간을 애써 견뎌왔습니다. 저마다 지닌 가치관과 저마다 갈망하는 자신의 이익에 따른 정치·경제적 극한 대립의 시간 또한 우리를 안타깝게 했습니다"라며 "무엇보다 지난 12월 3일,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총을 든 군인들로 위협을 받는 시대착오적 사태까지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라고 현 시국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비상 계엄령으로 여야,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온 국민이 충격과 공분에 휩싸였고, 우리 사회는 그 상흔으로 여전히 아파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조 대주교는 "화려한 예루살렘이나 거룩한 성전이 아닌 사회 최하층민인 목동들의 자리에서 탄생한 것은 사람을 향한 사랑의 실천 그 자체"라고 예수 탄생의 의미를 짚으면서,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정치 역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사람의 가치를 귀히 여기는 주님의 삶과 닮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에서의 정치는 위정자들의 이익을 위한 정쟁의 수단이 아니라 국민을 향한 봉사여야 한다"면서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현대사의 아픔이 아직 우리 뇌리에 남아 있음에도 봉사의 정치가 폭력의 도구로 또 한 번 훼손된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육화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겠습니다."라고 담화문을 마무리했습니다.


[담화문 전문]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머무시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자리로 만드시려 우리 주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교구민 모두와 함께 주님의 성탄을 기뻐합니다. 특별히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 속에서 매일의 삶을 굳건히 살아가시는 대구 경북의 시민과 도민 여러분들과 더불어 주님의 성탄을 또한 기뻐합니다. 


우리 교구는 지난 2년 동안 친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앞으로의 2년은 그 친교를 전례 안에서 더욱 풍성히 체험하고 나누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2025년 사목교서에서 밝혔듯이, “그리스도 신앙은 개인의 내면을 성찰하고 정신을 고양하는 일을 넘어서, 무엇보다 살아계신 그분과 만나는 것”입니다. 그 신앙의 정점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몸소 사람으로 오신 육화의 사건입니다. 하느님과 사람의 만남은 저 천상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한 가운데서 드러난 역사적 사건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그리스도 신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하느님의 자리로 귀하게 여기며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난 1년 우리 사회는 대립과 갈등의 시간을 애써 견뎌왔습니다. 저마다 지닌 가치관과 저마다 갈망하는 자신의 이익에 따른 정치·경제적 극한 대립의 시간 또한 우리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12월 3일, 민의의 전당인 국회가 총을 든 군인들로 위협을 받는 시대착오적 사태까지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번 비상 계엄령으로 여야,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온 국민이 충격과 공분에 휩싸였고, 우리 사회는 그 상흔으로 여전히 아파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육화는 화려한 예루살렘도, 거룩한 성전도 아닌 저 한적한 유다 산골 목동들의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사회 최하층민이었던 목동들을 향한 육화의 선포는 주님의 공생활 내내 지속된, 사람을 향한 사랑의 실천 그 자체였습니다. 주님의 육화는 하느님의 품위로 사람을 끌어올린 사건이 아니라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의 현실을 하느님께서 수용하신 사건입니다. 신학자 칼 라너가 명명한 대로 ‘하느님의 자기 양여’로서의 육화는 하느님이 당신의 자리를 박차고 사람에게 사람으로 온전히 당신을 내어주신 사건입니다.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이 육화 사건의 핵심입니다(요한 3,16 참조). 그리하여 육화의 신비는 서로를 향한 조화와 친교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의 삶 안에 선명히 새겨져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정치 역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사람의 가치를 귀히 여기는 주님의 삶과 닮아야 합니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에서의 정치는 위정자들의 이익을 위한 정쟁의 수단이 아니라 국민을 향한 봉사여야 합니다.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현대사의 아픔이 아직 우리 뇌리에 남아 있음에도 봉사의 정치가 폭력의 도구로 또 한 번 훼손된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육화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성탄의 밤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천사의 인사말을 듣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정쟁과 계엄으로 얼룩진 지난 대림의 시간이 성탄의 밤에 울려 퍼지는 천사의 기쁜 소식으로 치유와 위로, 그리고 희망을 향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교구민, 나아가 대구 경북의 시민과 도민 여러분들 한가운데 우리의 주님이 오셨습니다. 지난 시간 우리가 지켜 온 사람을 위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우리 곁에 오신 주님과 함께 두려움 없이 더욱 굳건히 지켜나가길 희망합니다. 우리 모두는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그 누구도 그 사랑을 빼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24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타대오 대주교

도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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