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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ON] ①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국보·보물 역대 최대 규모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은 1938년 '보화각'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으며,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보국'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간송미술관이 9월 3일 대구에 개관했습니다. 대구 간송미술관은 서울 성북구에 자리한 간송미술관의 첫 분관이자 상설전시관으로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대구 간송미술관은 유치경쟁에서부터 개관까지 약 10여 년이 걸린 장기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이번 주 토크ON에서는 간송미술관이 대구에 첫 분관을 설립한 이유와 개관전에 담은 의미는 무엇인지 전인건 대구 간송미술관장과 함께 살펴봅니다.

[김상호 사회자]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는 9월 3일, 한국을 대표하는 사립 미술관인 간송이 대구에서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구 간송미술관은 유치 경쟁에서부터 개관까지 10여 년이 걸린 장기 프로젝트인데요. 이번 주 토크ON은 대구간송미술관 개관에 담긴 의미를 전인건 대구 간송미술관장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전인건 대구 간송미술관장님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네, 안녕하십니까.

[김상호 사회자]
본격적으로 간송미술관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기 전에, 그동안의 과정을 정리한 영상을 한번 보시고 이야기를 이어가시죠.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네.

9년 만에 개관하는 '대구 간송미술관'
대구 간송미술관이 오는 3일 문을 엽니다. 대구시가 우리나라 3대 사립미술관 중 하나인 간송미술관과 지난 2016년 건립 계약을 맺은 지 9년 만입니다.

위치는 대구시 수성구 삼덕동 일대, 대구미술관 바로 옆입니다. 당초 2021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했지만 건립 공사가 지연되면서 지난 2022년 1월 착공했습니다.

국비와 시비 등 총사업비 400여억 원이 투입됐고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8천 3㎡로 경사진 기반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안동 도산서원에서 착안한 설계로 굵직한 나무 기둥 11개와 짙은 먹색의 벽돌로 외벽을 마감했습니다.

◀최문규 연세대 교수▶
"지어진 건물은 땅의 흐름에 맞게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면서 실제로는 옛날에 있는 지형을 거의 헤치지 않고 그 지형에 맞게 건물들을 잘게 나눠서.. 하나의 커다란 건물을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좋은 문화, 보물들을 담을 수 있는 담백한 그릇이었으면 좋겠다, 건물이 드러나기보다는 건물은 배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박석 마당과 연못, 정자가 있는 미술관 외부는 미술관이 닫아도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공간, 열린 미술관을 지향했습니다. 내부는 기획전시실, 미디어아트실, 수리복원실 등을 갖춘 상설전시관으로 건립됐습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위탁운영 하는데 서울 성북구에 있는 간송미술관의 첫 분관이자, 전국 유일의 간송 상설전시관입니다.

서울에 있는 간송미술관은 봄·가을 기획전에 집중하고 대구 간송미술관은 앞으로 연중 상설·기획 전시와 교육, 행사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대구에 새로운 미술관이 건립된 것은 2011년 대구미술관 개관 이후 13년만. 문화 보국 정신의 간송 미술관과 국채보상운동의 시작이자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 대구와의 만남이 앞으로 더 주목됩니다.
[김상호 사회자]
9월 3일에 문을 여는 간송미술관이 어떤 곳인지 관장님께서 직접 설명을 좀 해 주시죠.

[전인건 대구 간송미술관장]
네, 무엇보다도 먼저 개관까지 말씀하신 대로 정말 10년여가 걸린 장기 프로젝트였는데, 그동안에 굉장히 많이 도와주신 대구광역시 여러분, 그다음에 또 계속 성원을 보내주신 대구 시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그런 노력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큰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 1938년에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입니다. 오래된 사립미술관이지만 재단 법인화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2013년도에 재단 법인화가 되면서 그동안 필요했던 부분들을 목표로 잡았는데, 그중 하나가 중·남부권의 거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50여 년 동안 서울에서 운영할 때 봄과 가을로 매우 짧게 운영했었기 때문에, 서울과 경기권이 아닌 곳에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굉장히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가까이에서 편하게 보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많이 들었었는데, 재단이 설립되면서 이 계획이 본격화되었고, 대구와 인연이 되어 간송미술관의 첫 번째 지역 거점이자 첫 번째 유일한 상설전시관으로서 대구 간송미술관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대구 간송미술관과 서울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의 역할 분담이라고 할까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말씀해 주시죠.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
네, 서울에 있는 간송미술관 보화각은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1938년도에 만들어진 보화각이라는 건물을 중심으로 한 곳입니다. 그 건물 자체가 국가 등록 문화유산으로서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굉장히 특별한 장소입니다. 예전처럼 봄과 가을에 2주씩, 1년에 4주만 오픈하던 시기에서, 지금은 1년에 한 달 반씩, 총 3개월 동안 운영합니다. 나머지 9개월 동안은 미술관이 아닌 연구소나 교육기관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반면 대구 간송미술관은 상설 전시를 기본으로 하며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서울 보화각은 특별한 장소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짧게 짧게 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대구 간송미술관은 상설을 기본으로 하여 더 많은 분들, 더 다양한 분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교육은 연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상설 기관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의 많은 학교, 교육청 등과 협력하여 전통문화와 문화유산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가려고 합니다.

[김상호 사회자]
간송미술관으로서는 대구 간송미술관의 개관이 소장품을 많은 시민이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창구가 새로 열렸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전인건 대구 간송미술관장]
물론입니다.

[김상호 사회자]
관장님께서는 간송 선생님, 전형필 선생님의 손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전인건 대구 간송미술관장]
네, 맞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처음에 간송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보통 분이 아니시고, 이런 분이 아니었으면 우리 문화재가 그나마 이렇게라도 유지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하신 분인데, 간송 선생님의 ‘문화보국’ 정신, 어떤 생각으로 간송 선생님이 이런 일들을 해오셨는지 관장님의 말씀을 통해 직접 들어보고 싶습니다.

[전인건 대구 간송미술관장]
네, 사실 간송께서는 굉장히 훌륭한 스승이 계셨습니다. 3.1운동 때 민족 지도자 33인 중 한 분이셨던 위창 오세창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는데요. 이 위창 오세창 선생님께서 젊으셨을 때부터 주창하셨던 것이 문화보국, 즉 문화로 나라의 정신과 정체성을 지킨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도저히 하실 수 없었던 부분을 제자였던 간송과 함께 실천하셨던 부분이 바로 그 문화보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분은 끝까지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광복을 맞이하리라는 신념을 가지셨고, 또 식민 지배를 영속화하려는 조선총독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역사, 심지어는 말과 글, 이름까지도 빼앗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문화를 왜곡하고 훼손하며, 심지어 수탈하여 일본으로 가져가려는 시도를 막고, 언젠가 올 광복 이후에 훼손된 민족정신과 역사,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문화유산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정신과 역사,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는 증거품입니다. 그래서 그 증거품인 문화재를 모으고, 이를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하셨던 것이 간송의 일제강점기 때 ‘문화보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말씀하시는 중에 보면 요즘 생각이 많으시겠습니다.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전인건 대구 간송미술관장]
늘 생각이 많습니다.

[김상호 사회자]
지금 궁금한 게, 현재 간송에서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은 얼마나 되는지요?

[전인건 대구 간송미술관장]
굉장히 많이 받는 질문이긴 한데요. 이게 조금 애매한 게 기준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번에 개관 전에 나오는 혜원전신첩, 혜원 신윤복이 그린 굉장히 유명한 국보인 화첩인데요. 그거는 이제 한 건입니다. 그런데 이 안에는 30점의 그림이 들어있거든요. 그러면 이것은 한 건인가 30점인가?

또 하나는, 어떤 문고 같은 경우에는 사실 문고 하나니까 한 건인데, 그 안에 100권이 넘는 책이 있으니까 100여 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더 크게 보면 도자기인데요, 이 깨져 있는 도자기들이 있거든요. 그러면 이거는 깨져 있는 도자기의 파편들을 이렇게 수습했는데, 이게 한 건인데 1,000점이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편들이 굉장히 다양하니까요.

그런데 저희는 그래서 점수보다는 건수로 관리합니다. 기준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겠습니다만, 저희가 한 4,600건 정도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라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4,600건. 점수로 굳이 따진다면 3만 점이 좀 넘는 것 같기는 합니다.

[김상호 사회자]
지금 그 3만 점 중에서 대부분이 대구 간송미술관에 전시될 예정인가요?

[전인건 대구 간송미술관장]
물론입니다. 간송미술관이 갖고 있는 모든 콘텐츠는 교육이나 전시를 위해서 다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활용될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이번 개관전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갖고 있는 작품 중에서 국가가 지정한 국보와 보물이 사실상 전부 내려와 있는, 아주 특별한 전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김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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