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작가와 예술가, 철학가들이 영감의 원천으로 꼽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오랜 세월을 이어오며 현대 문명에까지 다양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의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겠죠. '그리스·로마 신화'에 얽힌 다양한 의학 이야기의 세계,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신경과 전문의 유수연 교수와 떠나보시죠.
[윤윤선 MC]
그리스 신화 이야기 해설사로만 계속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지금 설명하시는 거 들으면서 참 신경과 선생님이셨죠. 이어지는 이야기는 뇌전증인데, 옛날에는 엑스레이 이런 기술도 없었는데, 뇌전증이 왔을 때 그래서 신의 영역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석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유수연 신경과 전문의]
뇌전증은 고대부터 사실은 꽤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고대부터 묘사가 되던 질환 중의 하나입니다, 뇌전증이 있는 환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뭔가 좀 이상하게 갑자기 막 의식도 잃고 이상하게 몸을 움직이고 말도 안 통하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옛날 사람 눈에는 뭔가 신이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접신한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보이는 거죠. 혹은 귀신이 들어갔다 혹은 신이 내렸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보통은 어쨌든 신이 만든 질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이 뭔가 이 증상을 일으킨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표적으로 보여드릴 신들이 키벨레하고 포세이돈이라고 하는데, 이제 이 두 신이 바로 어떤 특정한 뇌전증과 관련 되어 있다고 알려져서, 그래서 이런 신들이 만든 병인 뇌전증이 신성한 병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뇌전증 자체는 발생 원인이 뇌 신경세포가 신경전달은 다 전기적인 신호로 하거든요. 그런데 정상적으로 전달되면 되는데, 일시적이나 드물게 혹은 지속적으로 과하게 이상흥분이 되거나 이상동기화가 되면 이게 갑자기 발작으로 나타나는 거죠. 발작이 되거나 의식이 날아가거나 이런 식으로 나타나서 그런 게 나타나게 되면 "아, 뇌전증이다." 이렇게 부르게 됩니다. 그런데 어쨌든 제가 말씀드렸듯이 옛날에는 이런 원인을 모르죠. 이렇게 어려운 원인을 모르니까 그냥 신이 만들었다 혹은 악령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좀 있었습니다.
키벨레라는 여신 자체가 이름이 낯익지는 않으실 거예요. 원래는 소아시아, 지금 튀르키예 지방에서 잘 나가던 여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 신화 쪽으로 약간 통합이 되면서 들어온 여신인데, 이 여신 같은 경우는 좀 성격이 엄해서 나쁜 짓을, 불경한 짓을 하면 용서를 안 하는 그런 엄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여신의 상징이 이렇게 두 마리 사자가 끄는 마차인데, 이 사자들도 사실은 여신의 신전에서 허튼짓을 하다가 벌 받아서 인간이 사자로 변한 그런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나한테 거슬리는 짓을 하는 불경한 자는 용서하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고, 그런데 이분한테 벌을 받으면 나타나는 모습 중의 하나가 이를 갈면서 오른쪽 팔다리를 떠는 발작 같은 걸 보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을 현대의학적으로 묘사하면 이를 가는 증상을 저희가 자동증이라고 부르거든요. 자동적으로 혼자 움직이는 증상이 있고, 오른쪽 팔다리를 떠는 증상을 저희가 간대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갑자기 이렇게 시곗바늘처럼 딱딱 움직이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런 증상이 보통 나타나면 오른쪽 간대 운동과 이를 가는 자동증이 있는 것은 대부분 좌측에 있는 측두엽 뇌전증이 있을 때 이런 증상으로 나타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아마 그때 당시에는 이런 걸 원인을 모르니까 좌측 측두엽 뇌전증을 진단한 게 아니고 키벨레 여신이 만들어준 병,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도 하나 있고요.
그다음 것은 또 포세이돈이 만든 뇌전증도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이제 포세이돈 같은 경우는 보통 바다의 신으로 아마 알려져 있을 거라 잘 아실 겁니다. 그래서 바다의 신이기도 한데, 사실은 또 하나의 유명한 신격이 말의 신 혹은 경주의 신이기도 하거든요? 왜 말의 신일까라고 생각하시겠지마는 제가 말씀드렸듯이 아테네라는 도시가 있잖아요, 아테네. 그리스의 되게 유명한 도시인데 그 도시의 수호신을 정할 때 아테나라는 여신과 포세이돈이 대결을 했습니다. '내가 수호신이 되겠다. 그런데 그러면 누구로 할래? 투표로 해라.' 굉장히 민주적으로 투표로 해라, 이렇게 정한 거죠. 그랬더니 "그럼 둘 중에서 좋은 걸 주는, 우리 도시에 좋은 걸 주는 신을 우리의 수호신으로 섬기겠습니다" 한 거예요. 그래서 아테나는 올리브 나무를 줬고 포세이돈은 말을 줬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까 말은 탈락하고 올리브 나무를 선택해서 결국에는 아테나 여신이 수호 여신이 되고 수호 신전, 파르테논 신전까지 지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제 말의 신이 된 거죠. 말을 탄생시킨 신이고 경주를 보호하는 신이니까. 그리고 실제로 신화 속 그림을 볼 때 포세이돈은 항상 이런 말 같은, 마차 같은 걸 타는 모습으로서 묘사가 됩니다.
이런 포세이돈 모는 마차에 나오는 저런 바다 괴물도 나중에 조금 언급이 될 텐데, 어쨌든 이제 말의 신으로 언급이 되는데요. 그래서인지 말처럼 비명을 지르는 발작을 일으키게 만든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보면 크게 소리 지르는 증상이 동반되는 발작 같은 경우는 저희가 보통 전두엽 뇌전증이라고 하거든요. 이 앞쪽 머리에서 나오는, 전기적 이상으로 인해서 뇌전증이 생기는 건데. 특히 이제 제가 볼 때는 말처럼 소리 지른다는 것 자체가 말은 보통 히히힝하면서 팔다리를 막 구르잖아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게 뭔가 거칠게 움직이면서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말처럼 소리 지른다고 묘사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되는데. 사실 실제로 막 발을 구르듯이 크게 움직이는 운동 동작이 전두엽 뇌전증에서 나타나는 동작 중에 하나거든요. 그래서 이러한 임상 양상은 아마 전두염 뇌전증 환자를 보고 '말처럼 소리 지르고 흔들리니까 이거는 포세이돈 신이 만들었을 거야'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결국에는, 그러니까 요즘 같으면 어떻게 보면 이런 경우 환자가 이렇게 보이면 뇌파 검사하고 혈액 검사나 약물 복용도 하고 뇌 영상 검사 이런 걸 해서 진단할 텐데, 옛날엔 모르니까 이 모습은 키벨레 여신이 만든 것, 이 모습은 포세이돈이 만든 것 해서 아마 증상이 있어도 신전에 눕혀놓고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보면 요즘은 어쨌든 현대 시대니까는 신전에 눕혀놓는 게 아니고. 그렇게 하면 안 되죠. 눕혀놓기만 하면 안 되니까. 진단된 환자는 저희가 항뇌전증 약재를 사용해서 치료를 하게 됩니다. 약물 치료가 가장 유명한 치료가 되겠고요. 그리고 환자의 특성에 따라서 약물치료만 하는 게 아니고 수술 치료라든지 신경자극술, 미주신경자극술이라든지, 그다음에 소아 난치성 질환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의료용 대마라든지 케톤 식이 요법 같은 거로 병행해서 환자의 증상을 조절하고 있습니다.
[이동훈 MC]
환자 특성에 따라서 아래 기술돼 있듯 다양한 치료법들이 이용된다고 하셨는데, 현대 의학으로 돌아왔을 때 이 뇌전증이라는 게 현재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수술에 속하는지도 궁금하고요. 그 예후는 어떤지도 궁금하네요.
[유수연 신경과 전문의]
이제 약이 워낙 좋은 약들이 많이 개발이 돼서 약을 잘 드시면, 한 10명 중 7~8명은 약물을 꾸준히만 잘 드시면 안정적으로 발작 없이 잘 지내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2~3명 정도는 사실은 약물에 조금 저항성이 있어서 약물 치료가 잘 안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경우에는 저희가 약물도 계속 바꿔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다른 원인을 한번 찾아보기도 하고 약물을 잘 드시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하긴 하는데, 그렇게 치료가 잘 안되는 분들이 있어서 아직도 좀 어려운 질환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쨌든 워낙 환자가 많기 때문에 자꾸 좋은 약물들이 계속 개발이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더 좋은 약물이 나와서 앞으로는 좀 힘들었던 환자분들 좀 더 치료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구성 이규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