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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MBC NEWS

R-3]일본군,위안소 영업 일지 매일 보고 받아

◀ANC▶ 대구MBC 8.15 특집 뉴스, '일본군 위안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세 번째 시간입니다.

일본은 위안부와 관련해 일본 정부나 군이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이 거짓인 것은 대구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문옥주 할머니 증언으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문옥주 할머니 증언은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이 썼던 일기를 통해서도 검증할 수 있습니다. 심병철 기잡니다. ◀END▶

◀VCR▶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박물관 타임캡슐은 일본군 위안부 운영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얀마와 싱가포르에 있었던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 박 모씨가 기록한 일기가 그 주인공입니다.

◀INT▶오채현 관장/타임캡슐 "우연히 고 서점에 들렀다가 바닥에 작은 수첩 같은 책이 2권 있더라고요. 그래서 보니까 펼쳐보니까 그냥 만년필로 깨알같이 써서, 아,이거 뭐 기록이구나, 그 정도로 하고 덮었는데, 다시 나중에 보니까 날짜가 기록이 돼 있어요. 아 이거 뭐지? 보니까 일기였더라고요 "

위안소의 회계와 사무를 맡았던 박 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이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일본 정부와 군이 위안부 관련 서류를 대거 폐기하는 바람에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입니다. ◀INT▶이신철 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 역사연구소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같은 경우는 당사자 기록이죠. 당사자 기록이라는 게 왜 중요하냐면 일본 정부나 군에서 생산한 또는 그들이 정한 규칙 또는 그들이 정한 동원의 방식, 이런 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집행되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자료이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그들이 만든 규정이나 법률이나 이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특히 1944년 4월6일자 일기에 나오는 '4차 위안단'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군이 적어도 4차례에 걸쳐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모집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4차 위안단'의 존재는 미군이 위안소 업자들을 상대로 한 포로 심문 보고서에 나온 내용과 일치합니다.

난징 대학살이 일어난 1938년 이후 일본군이 점령지의 치안 유지와 성병으로부터 병력을 지키기 위해 위안부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한 사실을 그대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INT▶이신철 교수/ 성균관대 동아시아 역사연구소 "일본군이나 정부가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과 다르게 여성들을 성노예라든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동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고요. 그다음에 당시의 여성들은 물건 취급을 당했습니다. "

일기에는 박 씨가 매일 오전 병참사령부에 위안부 영업 관련 일보를 제출했고 정기적으로 수입보고서도 낸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일본군이 위안소를 직접 관리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대구 출신 위안부 피해자였던 문옥주 할머니가 일본 작가인 모리카와 마치코 씨에게 증언한 내용도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에 구체적으로 등장합니다.

문 할머니를 데리고 간 업주의 이름과 시기, 위안소의 이름 등이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INT▶모리카와 마치코/프리랜서 작가 " 무엇보다도 문옥주 할머니는 위안소 경영자가 마츠모토였다는 것을 말해줬어요. (위안소 관리인) 일기에도 마츠모토가 등장합니다"

위안부들이 일본 군의관들에 의해 정기적으로 철저한 성병검사를 받았다는 사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S/U)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과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의 많은 부분이 일치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INT▶일본 극우세력 관계자 "일본군 위안부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 할머니는 조선전쟁(한국전쟁) 때의 양공주와 같아. 그래서 양공주가 일본군의 위안부라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아베 총리를 비롯해 내각 각료의 80%가 일본 극우세력의 온상인 일본회의 소속인 점을 감안하면 갈수록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사회의 분위기는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해 보입니다.

MBC 뉴스 심병철입니다.
심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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