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부 감독 교사의 이상한 행동
2022년 4월,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2022년 초 새로 부임해 온 태권도부 감독 교사는 태권도부 학생들의 훈련이 끝나자, 체육관으로 학생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교사는 갑자기 컴퓨터와 텔레비전을 연결한 뒤 동영상 하나를 틀어 보여줬습니다.
노출 의상을 입은 남녀 댄서들이 선정적인 춤을 추는 영상이었습니다.
교사는 급기야 학생들을 한 명씩 앞으로 불러내서 춤을 따라 추라고까지 지시했습니다.
학생들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며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부끄럽고 성적 수치심까지 느꼈다고 말합니다.
A 피해 학생은 "갑자기 사람 많은 데서 (춤을 추라고) 시키시니까 수치스럽기도 하고, 좀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학생들은 "평소에도 교사가 정강이와 엉덩이를 발로 차는 등 신체적으로도 학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학생들에 따르면, 교사는 쉬고 있는 태권도부 학생을 발견하고 욕설을 하면서 학생의 정강이와 엉덩이를 발로 걷어차는가 하면, 무릎 수술한 뒤 보조기를 차고 있는 학생에게 보조기를 빨리 풀라며 무릎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학교 성고충위원회 "성희롱·성폭력 아니다"
학부모들은 성적 학대 행위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학교 측에 진상 규명과 교사 징계를 요구했습니다.
동영상 시청 '학대'는 4월에 발생했는데, 학교 성고충심의위원회는 6개월 뒤인 2022년 10월에 열렸습니다.
학교가 이 사안을 가볍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성고충심의위원회는 성희롱이나 성폭력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5명의 피해 아동을 대상으로 진술을 받고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 사안은 성희롱·성폭력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심의 의결한다"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성고충심의위원회가 열리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학교장이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일을 크게 키우지 않은 방향으로 분위기를 몰아갔다는 게 학생 측의 주장입니다.
동영상 시청을 강제한 교사는 성고충심의위원회에서 동영상을 보여준 이유에 대해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어서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사에겐 관용 베풀면서, 학생에겐 보복?
학교 성고충심의위원회가 교사의 손을 들어준 이후 학교 측 보복이 시작됐다는 게 학생들 주장입니다.
가해 교사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고 나섰을 무렵인 2022년 9월 말, 피해 학생 4명은 한 교사를 찾아가 훈련, 대회 참여로 인한 결석 여부를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에 따르면 당시 수업이 모두 끝난 상황이었고, 그 반의 학생들이 청소하기 위해 반 내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해당 교사에게 질의를 마친 뒤 흩어졌는데, 갑자기 며칠 뒤 "4명의 학생이 교사의 교권을 침해했다"며 '교권 침해 사건'이 학교에 접수됐습니다.
교권 침해로 조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은 학생과 학부모는 너무나 어리둥절했습니다.
언론을 통해 접한 교권 침해 사건은 학생이 교사에게 폭언을 퍼붓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엄중한 사안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고충심의위원회는 사건 발생 6개월 만에 겨우 열리더니, 학교 교권보호위원회는 발생한 지 한 달도 안 돼 빠르게 추진됐습니다.
결과는 더 황당했습니다.
"수업이 끝났어도 교사의 지도 준비 시간을 침해했다"며 1명에게는 '출석정지 5일' 처분을, 3명에게는 봉사활동 처분을 내리는 등 모두를 징계한 겁니다.
동영상 시청 피해 학생, 감독 교사 '고소'
학교 측의 부당한 처사를 참다못해 동영상 시청 피해 학생 7명은 사건 발생 약 1년 만인 2023년 5월 무렵, 태권도부 감독 교사를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발생 당시 피해 학생이 10명이 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3학년 학생은 졸업했고, 몇몇은 학교 측과 접촉 이후 고소를 포기해 일부만이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학교장의 회유와 협박이 시작됐습니다.
교장은 다름 아닌 직전 태권도부 감독이자, 가해 교사의 태권도 선배였습니다.
교장은 교장실로 학생을 한 명씩 따로 불러 고소를 취하하라고 회유했다는 것이 학생 측의 주장입니다.
한 학생이 공개한 교장과의 대화 내용(녹취한 내용)에 따르면 교장은 "나는 한국 중고등학교 태권도연맹의 고위 간부이다"라며 "나는 퇴직 이후 태권도 쪽에 안 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교장은 "내가 너의 보증을 서주겠다"라거나 "네가 졸업하면 평판으로 널 보게 돼 있다"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습니다.
교장은 학부모에게도 전화 걸어 회유를 시도했고, 일부는 회유에 넘어가 고소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원, 가해 교사에 '유죄' 선고
성고충심의위원회가 '혐의 없다'던 가해 교사.
법원은 그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대구지방법원은 2024년 11월, 가해 교사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아동 학대 치료프로그램 수강, 아동 관련기관 5년간 취업제한을 명령했습니다.
재판부는 "교사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신체적, 정서적 학대한 것이 인정된다"고 밝혔습니다.
"피해 아동들이 입게 된 신체적,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피고인의 범행이 비교적 분명하게 확인됨에도 범행 이후 변명으로 일관하는 가해자의 태도가 좋지 못하다"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법부 판단이 나오기까지 2년여 동안 피해 학생들의 삶은 망가졌습니다.
전국 대회를 휩쓸 정도로 전도유망했던 한 학생은 대학에 합격하고도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B 피해 학생은 "교장 선생님이 따로 교장실로 불러서 '네가 뭐 이렇게 하면은 대학 가는 데 문제 있고, 대학 교수님도 다 나랑 아는 사이인데…' 그렇게 얘기하면서 대학에 합격하고도 진학을 포기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실시한 군 복무 신체검사에서는 정신과 치료 이력 때문에 현역 입대 불가 판정이 났습니다.
다수의 피해 학생이 태권도를 관두거나 전학을 갔고, 학교에 남은 학생은 주변의 따가운 눈총으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자녀를 바라보는 학부모들 마음도 찢어집니다.
한 피해 학생의 어머니는 "(아들이) 이유 없이 몸도 아프고, 학교에 갔을 때 그런 시선이나 본인이 그런 위치가 됐다는 거에 대해서 엄청나게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다"면서 "피해자를 보호하거나 위로하기는커녕 문제아로 낙인찍는 것은 어른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아니야?"라며 울먹였습니다.
지금은 학교를 관둔 가해 교사는 1심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학교장은 취재진에 "매뉴얼대로 사건을 처리했으며, 피해 학생이나 학부모를 회유하거나 협박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