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대구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이 지금 자리에 터를 잡은 지 올해로 100년이 됩니다.
오는 4월 1일 토요일이 100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의미를 더 하고 있습니다.
서문시장은 조선시대 가장 번성했던 향시에서 국내 섬유산업을 이끄는 메카였는데요.
지금은 지역의 상징적인 공간이자 보수 민심의 바로미터가 되기까지 서문시장의 지난 한 세기를 돌아봤습니다.
손은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성문 앞에 펼쳐진 난장.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사람들이 몰려있습니다.
서문시장의 전신인 대구장입니다.
대구읍성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모이면서 읍성 북문 밖에 형성된 이 향시가 100년 전인 192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습니다.
서문 밖 못이었던 자리를 메우고, 지금의 서문시장이라는 이름을 얻고 조선 3대 장시로 번성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전후에는 국채보상운동과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태동하는 역사적 현장이 되기도 했고, 이곳에서 한국전쟁을 겪고 1970년대까지 의류와 원단 등 섬유산업 메카로 지역 경제와 국내 수출까지 견인했습니다.
◀정재영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서울 동대문시장 상인들이 서문시장에 와서 섬유 도매를 다 떼어갈 정도였습니다. 광복 이후 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섬유 산업이 활성화될 때 유통을 책임진 곳이 서문시장이었던 거죠."
서문시장은 '정치 1번지'로 불리는 대구의 대표적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서문시장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직후인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현장▶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는 '노태우'하고 불러주세요!"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현장▶
"마지막에 서문시장에서 기 받고 갈랍니다, 여러분!"
지역의 민심을 헤아릴 수 있는 바로미터로 정치인들이 앞다퉈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100년의 세월 동안 서문시장은 여러 번의 대형 화재 발생으로 숱한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담뱃불에서 시작돼 4지구 전체를 집어삼킨 1975년 화마와 2지구를 잿더미로 만든 2005년 사고,
◀현장▶
지금까지도 복구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2016년 4지구 화재까지 1950년 이후 기록된 큰 불만 17번입니다.
반복된 화마의 아픔을 딛고, 지역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으로 한 세기 동안 지역민의 삶의 애환을 함께한 서문시장, 이제 100년을 맞았습니다.
MBC 뉴스 손은민입니다. (영상 취재 이승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