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열망이 표출됐던
6월항쟁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연속기획보도
세번째 순서입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민주화 운동과 진보의 성지로 불리던 대구가
지금은 보수의 심장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대구가 왜 이런 큰 변화를 겪게 됐는지
심병철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END▶
◀VCR▶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의 한 야산.
한국전쟁 발발 직후 좌익으로 몰려 살해된
피해자들의 유족들이 유해가 묻힌
임시 공동묘를 50여 년 만에 찾았습니다.
5.16 쿠데타 직후 미국의 눈치를 보던
박정희 정권이 좌익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피학살자 위령탑을 무참히 부수자
유족들이 감시를 피해 만든 가묘입니다.
◀INT▶함종호 부이사장/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유골이 훼손되는 것을 보고서 유족들이
치마폭에 유골을 싸고 이쪽으로 옮겨 와서"
당시 이곳 가창골에서는 약 만 명이 2주일간
군경에 의해 학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정부에 의해 강제로 보도연맹에 가입된
무고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도
약 3천명이 학살되는 등 대구경북 곳곳에서
억울한 죽음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항일운동과 진보운동의 뿌리가 강했던
지역 특성상 전국에서
학살 피해자가 가장 많았습니다.
한때 남로당원이었던 지역출신의
박정희 대통령은 정권을 잡자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당근과 채찍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민주화 진보세력을 탄압하는 한편
과거에 좌익일지라도 자신을 지지하면
온갖 특혜를 주었던 것입니다.
◀INT▶강창덕 회장/민주화운동 원로회
"혜택을 입은 사람이 많다 말이야. 그래서
대구 분위기가 이렇게 여당 일편도로 지형이
완전히 기울어졌다고"
여기에다 포항제철과 구미공단 등 지역에
경제적인 혜택을 집중시켜
정치적으로 지역패권주의를 부추기고
동서갈등을 조장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 전략은 전두환.노태우 정권까지 이어지며
결국 대구는 보수의 본산이 된 것입니다.
◀INT▶김찬수 상임이사/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80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지역 분열 정치가
더욱 더 기승을 부리면서 대구가 거기에
포로가 되어서 보수 아성으로서 오명을(쓰게 되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억울한 학살의 피해자로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야했던 대구와 경북..
자신들의 권력유지가 최우선인 군사정권의
오랜 통치기간을 거치면서
동서갈등의 한 축이자
지역패권주의의 상징이자 피해자가
되어버렸습니다.
MBC 뉴스 심병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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