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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연속기획보도 두번째입니다.
보수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대구는
1960년 대까지만 해도 민주화 운동과
진보의 성지로 불렸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항쟁의 도시, 대구의 역사를 되돌아 봤습니다.
심병철 기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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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항일운동과
진보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입니다
1907년 차관 천 300만 원으로
대한제국을 경제속국으로 만들려는 일제에
항거해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곳입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선비정신이 베여
의병 봉기 등 항일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한
이른바 반골의 고장이었습니다.
◀INT▶강창덕 회장/민주화운동 원로회
"일제시대부터 항일과 민족자주평화통일과
민주화 운동의 요람지가 되다시피했습니다"
1946년 미 군정의 식량 강제 공출 등의
수탈에 맞선 최초의 민중봉기인
10월항쟁이 일어난 곳도 바로 대구였습니다.
1956년 대통령 선거때는
대구에서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의 득표율은
무려 70% 대였습니다.
전국적으로 이승만 후보가 70%의 득표율을
기록해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대구경북의 야성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대구의 6개 선거구 가운데 5곳을
야당과 무소속 국회의원이 차지했습니다.
◀INT▶강창덕 회장/민주화운동 원로회
"그 당시에는 자유당은 정치적으로 대구에는
도저히 발을 못 붙일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죠"
1960년 4.19 혁명의 첫 도화선이 된
2.28 학생운동이 대구에서 발생한 것은
당시 대구의 정서를 고려하면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대구와 경북은 4.19 혁명 이후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교원노조와 혁신정당이
설립되었고, 반공특별법과 데모 규제법 등
2대 악법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INT▶김찬수 상임이사/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2.28 민주운동은 한국민주운동의 첫 걸음이었고 그 이후에 6.3사태나 반유신투쟁에서 전국적
민주화 운동의 선봉이었습니다"
민주화 운동과 진보의 성지로 불렸던 대구는
지역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과 함께
지역패권주의에 젖어들면서 서서히 우리나라
보수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하는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MBC 뉴스 심병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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