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MBC NEWS

R]이육사 문학관 개관

김철우 기자 입력 2016-05-10 15:24:13 조회수 0

◀ANC▶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민족저항시인 이육사의 대표작,
청포도의 첫 구절입니다.

이육사 선생이 문단에 등단하고
항일활동을 한 주무대가 대구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를 기념해 선생의
대구집 부근에 이육사 문학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김철우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END▶

◀VCR▶
지어진 지 100년은 된 듯한
1900년대 초 일본식 목재건물,

흙벽을 털어내고 바닥을 뜯어내고,

나무기둥과 기와정도만 남기고
모두 철거됩니다.
------------------- DS -----------------
철거된 집은 100년 전의 느낌을 살린 채
이육사 문학관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이육사 선생이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대구에서 살며 활동했다는 사실이
묻혀 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박현수 교수가
형과 함께 사재를 털었습니다.

◀INT▶ 박현수 교수/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이육사 시인이 대구와 관련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안동사람이라고
알고 있고 활동도 안동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제가 이육사 전공자로서 이를 밝히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고."

본명은 이원록, 대구로 이사온 지 7년만인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발 사건에
연루돼, 대구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할 당시의 수인번호 264번을 따
이육사라는 필명이 됐습니다.

◀INT▶ 이옥비/이육사 선생 딸
"저의 아버지(이육사)는
(일본경찰로부터)고문을 아주 많이
당하셨습니다. (할머니가)한복을
일주일에 4번을 갖다드려도
다 피로 물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헌병대 관계자가 살았던 집을
골라 문학관을 지은 것도 선생의 저항정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INT▶ 우지현 소장/이육사문학관 설계
"일제치하에서 주옥같은 시들을 쓰셨던 것처럼 저희도 이 건물에서 그런 새로운 의미들이
생성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부수지 않고"

한국 문학계의 거성들이 살았던,
또 활동했던 공간 대구,
이들을 기억하고 보존하는 노력을 더 늦춰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MBC NEWS 김철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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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우 kimcw@dg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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