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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일본군이 처음으로 주둔한 것은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입니다.
그 뒤로 확대 개편을 거듭하면서
한반도를 무력지배했고,
광복이후 일본군은 되돌아갔지만
그 땅에는 미군이 주둔하게 됩니다.
광복 70주년 기획뉴스,
오늘은 광복이 됐지만,
백년이 지나도록 우리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우리의 땅을 짚어봅니다.
김철우 기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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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철도 3호선 공사가 한창이던 2012년,
공사현장 발굴조사를 했더니
고인돌이라 불리는 지석묘가 나왔습니다.
1930년대 일제시대에 이뤄졌던 조사지역을
재발굴한 것인데요,
당시 발굴지도를 보면 일본군부대가 있던
지역을 비켜서 조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일전쟁 때 대구에 진출한 일본군은
달성공원이라 불리는 달성에 주둔합니다.
그 뒤 일본군은 확대개편되면서
경상감영 앞을 비롯해 주둔지를 늘려갑니다.
◀INT▶ 김일수/역사학자
"1916년이 되면 일본군대는 대구에 주둔하는
보병 80연대로 재편됩니다. 보병 80연대가 주둔하게 되고 그 주둔지가 지금의
미군부대입니다."
일본군 주둔지에는 광복 후 캠프 헨리,
워커, 조지 같은 미군부대가 들어섭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군부대 주둔으로
난개발은 없었던 덕에
유적지로서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입니다.
◀INT▶ 정인성 교수/영남대 문화인류학과
"2006년도에 지표조사를 했습니다. 그때 병영(미군부대)내에서 다수의 (지석묘)덮개돌이
확인됐던 겁니다. 그러니까 일본군이 쓰던 병영터(미군부대)자리가 대봉동 지석묘의 중심지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대봉동, 그러니까 지금의 남구 이천동 지역은
청동기시대 대구에서 가장 큰 마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INT▶ 정인성 교수/영남대 문화인류학과
"많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이 공간(미군부대)에 대한 조사를 희망하고 있죠. 그렇게 돼야 대구지역의 청동기시대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저희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일제에 빼앗긴 뒤 100년 가까이 우리품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땅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MBC NEWS 김철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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