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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구문화방송은 잊혀져 가는
대구의 항일투쟁 역사와 일제의 침략 현장을
되짚어 보면서 우리 지역이 가진 역사 유산과 잠재력을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순서로
대구에서 일어난 최초의 항일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다시한번 새겨봅니다.
김철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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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일본은 조선에 강제적으로 차관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침탈을 시작합니다.
여기에 반발해 1907년 2월
대구의 서상돈과 김광제 등이 국민 한명이
1원만 모아도 일본의 빚을 모두 갚는다며
빚 탕감에 나선 것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전국으로 번졌습니다.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국채보상연합회의소인데,
당시 회장이 지역의 지부로 보낸 공문서가
일반에게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 CG 1
당시 회장은 이 준.
헤이그 특사의 한명이었던 이 준 열사가
헤이그로 떠나기 이틀 전 국채보상운동을
독려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 CG 2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특사들이 밝히고자 한 밀서는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독립을 원하는
당시 조선의 의지가 표현돼 있습니다.
◀INT▶ 이현태 학예연구사/국립대구박물관
"이 준 열사를 비롯한 헤이그에 파견된 3명의 특사가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내용을
전세계인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이죠.
그것을 통해서 경제적인 주권을 일본으로부터 되찾아오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의 빚을 일반 서민들이 나서서
갚겠다는 국채보상운동은 그 뒤,
1997년 IMF사태 때 '금 모으기'로 이어졌고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운동으로 번진 것은
우리 고유의 정신문화자산으로 남았습니다.
◀INT▶ 김지욱 전문위원/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도라서
국체보상운동의 정신을 세계에 선양하는데 아주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념공원도 생기고
유네스코 등재도 추진되고 있는 국채보상운동,
대구시민은 물론 누구라도 대구 곳곳에서
자랑스러운 운동의 흔적과 기록을
보다 손쉽게 만나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일 것입니다.
MBC NEWS 김철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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