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남:대구에서 이렇게 포크페스티벌이 열린 것은
대구가 유난히 포크음악이 발전했고
포크 음악의 역사도 깊기 때문인데요,
여:대구에서는 지난 1960대부터 이미
포크 밴드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등
포크음악이 우리의 노래로 자리잡기까지
대구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대구와 포크 음악과의 인연을
조재한 기자가 보도합니다.
◀END▶
◀VCR▶
한국 전쟁이 끝난뒤 살아가기에도 빠듯한
힘들었던 시대에 미 8군을 통해
외국의 음악이 시중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대구에서도 1960년대에 포크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는 음악인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1964년에 '블루 스카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본격적인 공연과 연주활동을
시작합니다.
◀INT▶
방성용/1960년대 포크밴드'바보스' 멤버
"(선배 한분이)너네들만 (노래)하지말고 대구에 음악하는 학생들 모두 모으라고 해서 그때 30명 정도 모았습니다. 그 중에 라이크외국어학원 김인환도 있고 이동구씨 그 분은 (경북대)의과대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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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팝과 발라드, 포크를 구분하지 않고
재즈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1966년에 열린
전국 최초의 재즈페스티벌에 나가 장려상을
받기도 합니다. CG <--
◀INT▶ 방성용/1960년대 포크밴드'바보스' 멤버
"(1960년대에 노래를)한다면 발라드풍의 포크를 대학생들이 손뼉치고 노래를 했지, 가요는 부르지 않았습니다. 가요를 안 하니까 포크모임이 있는 곳은 대구 밖에 없으니까, 출발이 대구
아니었겠느냐, 저는 지금도 장담합니다."
당시를 아는, 또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구의 살롱문화를 따라 수많은 음악다방,
음악감상실이 생겼고
포크의 전성기에 대구는 그 중심에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INT▶ 이대희 대구MBC DJ/음악방송 경력32년
"서울에서 많은 가수들이 60년대, 70년대 대구를 근거지로 활동한 사람들이 많았단 말입니다. 그 이유는 서울의 유행과는 달리 대구로 와서 (가수들에게)기회의 땅이 여기 있었다. 포크음악이 대구에서 커갈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졌던 거죠."
◀INT▶ 이춘호/영남일보 기자('포크의 본향(本鄕), 대구' 기획연재)
"분명히 대구는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를 보더라도 포크의 자양분이 A부터 Z까지 고루
흩어져 있는 곳인데, 이것을 모으게 되면 대한민국 포크페스티벌의 1번지와 동아시아 포크페스티벌의 메카로 될 수 있는 충분한 에너지와 자양분을 갖고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포크음악이
우리의 노래로 자리잡기까지
대구는 큰 역할을 했고
그 저력을 바탕으로 이제 포크의 부활을
꿈꾸고 있습니다.
MBC NEWS 조재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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