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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종영

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월-금 18시 15분 방송
장르
교양 프로그램
등급
All
진행
김규종교수 서상국아나운서
작가
신재선
연출
이영환

7월 26일 영화 <님은 먼곳에>

2021년 09월 23일 17시 53분 52초 2년 전
211.201.77.219 | 조회수 :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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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 (<님은 먼곳에>)

2006년 <라디오 스타>, 2007년 <즐거운 인생>을 거쳐 <님은 먼 곳에>로 이준익의 음악영화 삼부작이 마무리되었다. 왕년의 스타가수를 둘러싼 소시민의 이야기를 다룬 <라디오 스타>. 지나간 삶의 의미를 반추하는 나이에 ‘활화산 밴드’를 부활시킨 아저씨들을 위한 <즐거운 인생>. 그런데 <님은 먼 곳에>는 색다른 영화다.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베트남전쟁, 그 한복판을 관통하는 여자의 시선으로 사람과 사랑, 그것을 뛰어넘는 더 크고 위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베트남전쟁과 인간군상, 그리고 위대한 사랑을 포괄하는 영화를 꿈꾼 이준익 감독. 이것은 관객에게 익숙한 전쟁영화 공식에 배치되는 의도가 아닐 수 없다. <잔 다르크>나 <레지던트 이블> 같은 영화를 빼면 전쟁당사자는 거의 예외 없이 남성이며, 남성의 영웅성이나 우정에 무게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 법칙이었으니 말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베트남전쟁 영화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보잘것없었다. 김유민의 <푸른 옷소매>(1991)와 정지영의 <하얀 전쟁> (1992), 그리고 공포영화로 개봉된 공수창의 <알 포인트> (2004)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영화는 베트남전쟁의 실체보다는 한국인들의 경험과 정서에 초점을 맞추는 부분적인 성과에 머물러 있었다.

1971년 대한민국, 그리고 베트남전쟁 (1960-1975)

<님은 먼 곳에>의 시간배경인 1971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정치사적인 의미가 있는 시기다. 1968년 1.21 무장간첩 침투와 그것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이른바 684부대 혹은 실미도 부대. 그런 정세에서 감행된 1969년 3선 개헌과 1971년 박정희의 대선출마와 당선 및 비상사태선포. 1970년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된 ‘잘살아보세’의 새마을운동.

이와 같은 회오리 정국의 대미를 장식하는 사건이 1972년에 단행된 ‘시월 유신’이었다. 그렇다면 베트남전쟁과 1971년은 그렇게 긴밀한 상호관계가 없는 듯 보인다. 왜냐면 이미 8년 전인 1963년 박정희는 케네디에게 한국군의 베트남파병을 자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시간상으로 볼 때 베트남전쟁은 1970년대 한국인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상이었다.

오늘날 일부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우호증진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베트남전쟁의 전모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한국군이 수행한 수많은 전투와 살육의 전반적인 의미망 포착에 실패하고 있다. 이것에 관한 부분적인 정보를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저작 <대한민국 史 2>에서 찾을 수 있다.

“파병된 한국군 가운데 총 5천여 명의 죽음, 1만 명의 부상자, 2만여 명의 고엽제 환자가 양산되었다. 파병기간에 한국군은 5만 명의 베트남인들을 살해하였다. 당시 한국군 소장이 미국으로부터 받은 월급은 354달러인 반면, 필리핀군과 타이군 소위는 각각 442달러와 389달러를 받았다. 베트남에 참전한 대가로 한국은 모두 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불운한 시대의 인간군상

<님은 먼 곳에>의 관객은 다채로운 눈요기와 만난다. 1970년대 초반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남루하고 허접한 풍경부터 용병들의 각축장 사이공과 포화의 호이안까지. 그런 시간과 공간에서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사건이 촘촘하게 엮이면서 영화는 진행된다. 영화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돈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가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연결된다. 인간과 인간의 격의 없는 유대가 아니라, 돈이 인간의 모든 것을 말하는 황금만능과 일확천금의 천박한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위문공연단 선발장면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전국적인 땅 투기와 아파트광풍 직전의 대한민국과 그곳에 거주하는 인간군상의 욕망을 담은 영화 <님은 먼 곳에>.

‘화이 낫 Why Not!' 밴드의 우두머리 정만을 생각해보자. 베트남에서 동료 연주자들의 돈을 떼먹고 국내로 도주한 막돼먹은 인간 정만. 하지만 그는 다시 돈에 몰리고, 도달한 결론은 베트남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는 살인도 불사할 태세가 결연하다. 애인의 임신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정만은 돈의 하수인이자 노예로 그려진다.

밴드 대원들 모두가 그러하다. 필리핀 밴드에서 일하다 자리를 바꾼 용득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들이 베트남 지폐와 미국 달러를 불태우는 장면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그들이 베트남에 간 모든 이유와 목적이 완전하게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님은 먼 곳에>가 더러 이해되지 않는 까닭은 이런 허방다리에서 기인한다.

순이가 베트남에 간 까닭은

완고하고 완악한 시어머니 성화에 씨를 받으러 군대로 남편을 면회 가는 순이. 여관방에서 철없는 남편이 내뱉는 뜬금없는 소리. “사랑이 뭔지 아나?” 가까운 과거 1960-70년대의 결혼풍속도 가운데 하나가 포착된다. 양가에서 부부를 점찍어버리는 ‘정혼’으로 혼인한 두 사람. 불학무식한 아내와 도회지 대학출신 남편. 그들의 불행은 예정된 수순이다.

아내와 함께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은 애인에게로 가 있는 남편 상길. 내무반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어처구니없는 양자택일의 순간에 베트남을 선택하는 상길. <님은 먼 곳에>가 관객을 혼란스럽게 인도하는 대목은 여기서 발원한다. 6.25 전란에서 남편 잃은 시어머니가 순이에게 상길을 찾아오라는 엄명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가!

영화는 순이에게 가능할 법하지 않은 명령을 수행하도록 한다. 이제 관객은 생각하기 시작한다. 1971년이란 시간과 경상도 어느 촌구석과 거기 살던 고집스럽고 우악한 노파의 욕망에 대하여. 여기 더하여 베트남이 그 시절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각인되었는지를. 따라서 <님은 먼 곳에>는 4-50대 중장년에게 지나간 추억을 불러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순이는 정말 시어머니 명령 때문에 베트남에 갔는가. 베트남이 어디 있는지, 베트남전쟁이 무엇을 뜻하는지 순이나 시어머니는 알고나 있는가. 상길과 며느리, 상길과 애인의 관계를 무지렁이 촌로는 알고 있을까. 6.25 한국동란에 얽매어 20년을 살아온 여필종부 유형의 고집불통 노파의 명령에 순순히 복종하는 순이 내부에는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

<님은 먼 곳에>의 몇 가지 미덕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 (노래 <님은 먼 곳에> 전문)

록의 영원한 대부 신중현이 1970년 작사-작곡하고 김추자가 불러 큰 반향을 몰고 온 노래 <님은 먼 곳에>. 이미 김추자는 1969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와 <늦기 전에> 등으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김추자의 노래 <님은 먼 곳에>는 영화에서 가사와 아무 관련도 없으며, 무척이나 생뚱맞게 울려 퍼진다. 감독이 노리는 바다.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에서 ‘님’의 실체처럼 순이가 부르는 노래의 ‘님’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남편 상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거나 단순하다. 혹은 정체 모를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시대 최후의 낭만주의자일지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시골 아낙의 우울한 신세 한탄인가. 감독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님은 먼 곳에>는 쓸쓸하고 우울한 면모로 곳곳에서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그토록 청순한 순이가 ‘써니’가 되어 미군 장교에게 몸을 파는 장면은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상흔을 객석에 남긴다. 권력과 돈의 역학관계, 미국과 한국 그리고 베트남 관계를 당연히 여기는 사람은 문제 되지 않겠지만, 나는 몹시 괴로웠다. 과거가 환기하는 고통의 기억.

순이와 정만 일행을 생포한 베트콩 장교의 말도 우리의 허를 찌른다.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군인들도 돈 벌려고 여기 온 거요!” 미군과 그들의 용병인 외국군 혹은 위문공연단의 존재를 명쾌하게 규정하는 촌철살인. 전쟁 와중에 지하 방공호에 구축한 초등학교와 학생들의 진지한 배움의 자세는 베트남전쟁의 실체와 결과를 일깨우기에 충분하다.

글을 마치면서: 남는 문제들

<님은 먼 곳에>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마치 이웃의 가까운 누이가 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왜 그토록 그녀가 베트남에 집착하는지, 사랑도 없는 남편을 찾아가는 이유가 뭔지, 혹은 전근대에 머물러있는 시어머니 말을 왜 그리 수더분하게 받아들이는지. 모든 것이 언짢았다. 한 마디로 1970년대 한국사회의 일상이 마뜩찮았던 게다.

그래선지 모르지만, 마지막 장면은 선선히 수용되지 않았다. 순이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나로서는 베트남전쟁 그 한복판을 관통하는 ‘위대한 사랑’의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가 완전히 망각한 베트남전쟁의 상처에 대한 반추는 소중하게 다가왔다.

베트남전쟁이 우리에게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를 되씹어야 한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베트남에 상길이도, 순이도, 돈을 불태운 밴드도, 한국군도 무엇을 위해 갔는가. 오직 돈 때문인가?! 정말 그런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씻을 수 없는 상흔이 있다. 그런 깊은 상처를 남긴 크나큰 과오를 반성하는 계기로 <님은 먼 곳에>가 오래 기억되었으면 한다.

베트남전쟁을 다각도로 천착한 영화를 찬찬히 뜯어보는 일도 의미 있을 듯하다. 백계 러시아 이주민을 주인공으로 삼은 마이클 치미노의 반공영화 <디어 헌터>. 존재론적이고 현학적이며 가학적으로 베트남전쟁을 그려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어설픈 자기반성이 있지만 미국 입장에 끝까지 충실한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등등. 이런 영화와 어깨를 견줄 대한민국의 베트남전쟁 영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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