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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종영

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월-금 18시 15분 방송
장르
교양 프로그램
등급
All
진행
김규종교수 서상국아나운서
작가
신재선
연출
이영환

7월 28일 책<남한산성>

2021년 09월 23일 17시 56분 04초 2년 전
211.201.77.219 | 조회수 :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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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각 (<남한산성>)

임진왜란(1592-1598)이 끝나고 30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일어난 정묘호란 (1627). 두 전란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 이른바 인조반정 (1623). 몰락해가는 명나라와 신흥강국 후금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펴던 광해군을 옥좌에서 몰아낸 사건이다. 인조와 그 휘하가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쓰러져가는 원나라를 끝까지 받들려고 요동정벌을 주장한 최영 무리에게 반란의 칼날을 들이댄 이성계. 그가 내세웠던 요동정벌 불가의 첫 번째 근거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일은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회군으로 이성계는 고려의 숨통을 자르고, 조선의 태조가 되었다. 대륙의 주인이 바뀌는 시점에 반도의 역사도 크게 요동쳤다는 말이다.

김훈의 신작소설 <남한산성>은 음력 1636년 12월 14일부터 이듬해 2월 초까지 일어난 병자호란을 담아낸다. 전작 <칼의 노래>와 달리 <남한산성>에서 우리는 치열하고 강렬한 작가의 목소리를 만나지 못한다. 그는 여러 걸음 물러서 있다. 거리를 두고 그 시기와 인물들과 사건을 추적한다. 따라서 소설은 담담하고 더러는 밋밋한 느낌마저 전달한다.

병자호란을 바라보는 조선 임금과 신하들

정묘호란 때 인조는 서울을 버리고 강화도로 파천한 전력이 있다. 마치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내뺐던 것과 똑같이. 그리고 병자년에 다시 임금은 강화도로 줄행랑치려 한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군왕과 그를 보좌하는 신하들의 옹색함이 작품 첫머리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원임 대신이자 형인 김상용의 급서를 받는다.

“적들이 이미 서교(西郊)에 당도하였고, 조정은 파천하였다. 어가는 남대문에서 길이 끊겨 남한산성으로 향하였다. 세자는 상감(上監)을 따랐다. 나는 빈궁과 대군을 받들어 강화로 간다. 그리 되었으니 그리 알라. 그리 알면 스스로 몸 둘 곳 또한 알 것이다. 참혹하여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다만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남한산성>, 39쪽.)

길지 않은 서찰에서 독자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당대의 정세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소설에서 작가는 세 사람의 문신을 통하여 병자호란을 대하는 조선의 고관대작들 모습을 드러낸다. 백제시조 온조를 모시는 사당에 제사하는 장면에서 이런 정황은 자못 선명하다. 영의정 김류가 초헌을, 이조판서 최명길이 아헌을, 그리고 김상헌이 종헌을 올린다.

“김류의 환영 속에서 흙에 박힌 성 뿌리가 뽑혀 허공으로 떠오른 남한산성이 태고 속으로 사라지는 온조의 혼령을 따라가고 있었다. 남은 날들이 며칠일까를 생각하면서 김류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236쪽.)

“왕조가 쓰러지고 세상이 무너져도 삶은 영원하고, 삶의 영원성만이 치욕을 덮어서 위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최명길은 차가운 땅에 이마를 대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치욕이 기다리는 넓은 세상을 향해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 것이었다.” (236쪽.)

“모든 환란의 시간은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 다시 맑게 피어나고 있으므로, 그 새벽의 시간은 더럽혀질 수 없고, 다가오는 그것들 앞에서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이마를 땅에 대고 김상헌은 그 새로움을 경건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237쪽.)

김류는 목전에 닥친 패망을, 최명길은 치욕을 딛고 일어서는 미래의 가능성을, 김상헌은 옥쇄를 각오한 결사항쟁을 생각한다. 그런데 인조가 대신들의 이런 생각 모두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인조는 청에 맞설 군병을 모으는 격서를 내는 한편, 화친사절로 최명길을 은밀하게 적 진영으로 파견한다. 약소국 군주의 변증법적인 모습이 약여하다.

전쟁을 바라보는 정복자 청 태종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의 여덟 번째 아들 황타이지는 부왕이 죽자 형들을 죽이고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천자에 오른다. 그는 명을 옥죄고, 조선에 국서를 보내 군신 관계를 요구한다.

“네가 명을 황제라 칭하면서 너의 신하와 백성들이 나를 황제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까닭을 말하라. 또 너희가 나를 도적이며 오랑캐라 부른다는데, 네가 한 고을의 임금으로 비단옷을 걸치고 기와지붕 밑에 앉아서 도적을 잡지 않는 까닭을 듣고자 한다. 황제가 너에게서 비롯하며, 천하가 너에게서 말미암는 것이냐. 너는 대답하라.” (25-26쪽.)

왕자와 대신을 인질로 보내고 청에 사대하라는 태종의 요구를 인조는 거부한다. 그리하여 용골대를 선봉장으로 하는 청나라 군대가 조선의 관노출신 정명수를 통역관으로 대동하고 출병한다. <남한산성>에서 우리는 정명수의 변신행각과 용골대의 희망, 그리고 명을 받드는 조선을 무릎 꿇리려는 태종의 강렬한 욕망이 뒤얽히는 서사를 목도한다.

새해 원단에 인조가 피난지 남한산성에서 명나라 수도 북경을 향해 올리는 ‘망궐례 望闕禮’ 장면은 압권이다. 망국으로 향하는 명을 사지(死地)에서도 예를 다해 받들고자 하는 조선 군신들의 결연한 모습이 눈물겨운 것이다. 그런 기막힌 장면을 태종이 ‘망월봉’에서 내려다본다. 대포공격을 제안하는 용골대를 만류하는 청 태종의 심사는 적잖게 복잡하다.

“풀리는 강을 바라보면서 칸은 망월봉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조선행궁의 망궐례를 생각했다. 홍이포의 사정거리 안에서 명을 향해 영신(迎新)의 춤을 추던 조선왕의 모습은 칸의 마음에 깊이 박혀들었다. - 난해한 나라로구나. 아주 으깨지는 말자. 부수기보다는 스스로 부서져야 새로워질 수 있겠구나 -.” (276쪽.)

“말을 접지도 구기지도 말며, 말을 퍼서 내지르라”는 훈시로 태종은 문관들을 다스린다. 그가 인조에게 보낸 세 차례의 문서에서 이런 정황이 드러나 있다. 태종은 끝내 조선과 인조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들을 도륙하지도 않는다. 그는 성안에서 조선의 군신이 자진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성을 깨뜨리지 않고서 조선의 진정한 항복을 받아내고자 한다.

전란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시각

<칼의 노래>에서 작가는 이순신과 선조를 통하여 임진왜란을 들여다본다. 따라서 소설은 매우 집중적이고 일목요연하며, 단단한 느낌을 준다. 반면 <남한산성>에서는 전쟁을 바라보는 상이한 시선들이 무차별적으로 곳곳에서 번뜩인다. 전쟁을 그려내는 작가의 여러 가지 손길에 독자는 당혹감을 떨치지 못한다. 이것은 민초들의 경우에 우심하다.

소설 첫머리에서 김상헌은 송파나루 사공을 도륙한다. 적의 도강을 도와주면서 목숨을 부지하려는 사공을 조선의 사대부가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사공과 같은 생각을 가진 백성들은 곳곳에 있다. 청에 투항한 조선 정탐들의 회유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야 나, 푸줏간 큰노미일세. 거기서 떨지 말고 삼전도로 오라구. 다 끝난 일 아닌가. 야! 늬들, 정신 차려!” (225쪽.)

국가를 부정하고 지배계급을 무시하는 모습은 청의 대군과 대치하고 있는 남한산성 안의 조선 군병들도 매한가지다. 늙고 병든 말을 잡아서 병사들을 먹일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의 영의정 김류를 향해 군병들이 비아냥거린다.

“영상대감도 말죽 한 그릇 드시오. 말 내장이 아주 부드럽소. 아니, 말을 잡아주시려면 살쪘을 때 잡으시지 어찌 주려서 바싹 마른 뒤에 잡으시오. 깔개를 거두어 말을 먹이시고, 또 그 말을 잡아 소인들을 먹이시니, 소인들이 전하의 금지옥엽임을 알겠소이다.” (94쪽.)

그런데 소설가가 정성 들여 그려낸 대장장이 서날쇠의 형상은 사뭇 다르다. 건강하고 지혜로운 날쇠는 주어진 천명을 묵묵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전란이 닥치자 그는 아내와 아들들을 피란시키고, 대장간을 가동하여 온갖 병장기를 단련한다. 송파나루 사공의 어린 딸 나루를 건사하고, 예조판서의 명에 따라 목숨을 걸고 격서(檄書)를 전국각처로 전달한다.

“서날쇠가 눈 위에 꿇어앉아 김상헌에게 큰절을 올렸다. 김상헌이 땅에 엎드려 맞절로 받았다. 예조판서의 머리와 대장장이의 머리가 닿을 듯이 가까웠다. 새가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엎드린 김상헌의 등에 눈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김상헌이 일어섰다. 서날쇠가 일어섰다.” (232쪽.)

날쇠의 행장에서 작가는 다가올 날들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 끄트머리에서 날쇠는 나루를 쌍둥이 아들 가운데 하나와 짝지을 생각으로 웃는다. 그들의 후예가 조선의 민초로 건강하게 자라날 것을 작가는 믿고 있는 성싶다. 반면에 청에 투항한 호조좌랑이나 도주한 강화 검찰사 김경징 같은 사대부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서늘하리만큼 담담하다.

글을 마치면서

식민지 조선의 기개 높은 시인 조지훈은 산문시 <봉황수 鳳凰愁>에서 망국의 슬픔과 약소국의 비애를 절창으로 노래하였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치욕을 되풀이한 조선을 돌이켜보는 시인의 흉중에 끓어오른 풍자가 자못 눈물겹다. ‘용의 나라’ 중국을 끝없이 받들었던 ‘봉황의 나라’가 그토록 경멸하던 비천한 왜에게 나라를 빼앗기다니!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참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에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소리도 없었다. 품석 옆에서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봉황새> 전문.)

우리 역사는 치욕을 되풀이하면서 예까지 왔다. 숱한 전란을 겪으면서도 군왕이나 사대부 같은 지배계급은 반성이나 회한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매번 목숨을 구걸하며 도주했으며, 그것은 불과 두 세대 전에 일어난 6.25 전란 때에도 고스란히 되풀이되었다. <남한산성>은 치욕과 수치를 반복한 조선의 중추를 찬찬히 들여다본 소설이다.

스스로를 지킬 무력도 없이 언설(言舌)로만 전란을 논하고 평가하는 숱한 말들의 난무를 작가는 여과 없이 들춰낸다. 그 결과 <남한산성>에는 요사한 언어의 군무가 자못 현란하다. 말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허공중에 떠돌수록 민초들의 삶과 국운은 기울어만 갔다. 하여 작가는 새삼 묻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이며, 역사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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