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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종영

김규종 서상국의 시인의 저녁

월-금 18시 15분 방송
장르
교양 프로그램
등급
All
진행
김규종교수 서상국아나운서
작가
신재선
연출
이영환

7월 21일 책 <왼손에 노자, 오른손에 공자>

2021년 09월 23일 17시 51분 55초 2년 전
211.201.77.219 | 조회수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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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 노자 오른손에 공자>

<왼손에 노자 오른손에 공자>, 창화 지음, 박양화 옮김, 영림카디널, 2007.

우리가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함께 존재한 가장 가까운 나라 중국. 일본과 달리 뭍으로 쉽게 도달할 수 있었던 거대제국. 싫든 좋든 이웃으로 앞으로도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 나라. 65억 세계인의 5분의 1을 구성하는 인구대국. 역사와 문화와 예술과 이데올로기로 세계의 이목을 끄는 나라. 그리고 요즘은 티베트와 올림픽으로 관심대상인 나라.

중국의 표상은 다채롭다. 유학생, 상사 주재원, 외교관과 보따리 장사에서 밀수꾼과 매춘여성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여러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심심찮게 중국의 현대는 물론, 고대의 각종 역사서와 처세술을 담은 책들이 출간된다. 창화가 엮어서 펴낸 <왼손에 노자 오른손에 공자>도 그와 같은 추세의 하나로 보면 되리라.

엮은이는 서문에서 노장철학과 유가사상의 의미를 간명하게 정리하여 소개한다.

"수천 년의 중국역사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왕조마다 가장 번성을 누렸던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그만한 비결이 있었는데, 안에는 노장사상을 품고, 밖으로는 유가사상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중국인이 마음을 수련하고 벼슬에 나아가던 이치였다. 그들은 밖으로는 적극적으로 세상일에 참여하고, 안으로는 자신의 마음을 수련했다."

노자가 권하는 수양방책

창화는 중국 5천년 역사에서 사건과 일화와 교훈을 가져온다. 그것은 그들이 축적한 각종 문자기록이 매우 풍요롭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예컨대 노자 <도덕경> 제47장에 나오는 '불위이성(不爲而成)', 즉 '애쓰지 않고도 이루는 것'을 재미난 일화로 설명한다.

춘추시대 뛰어난 말몰이꾼 왕양과 진나라 대부 조양자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훌륭한 기술을 배우고자 하였던 조양자가 어느 정도 숙련되자 대결을 청했다. 그러나 조양자는 번번이 왕양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말을 바꿔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조양자는 의심이 생긴다. 왕양이 비책을 모두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왕양이 말한다.

"마차경주에서 달리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말입니다. 말이 경주를 주도하고, 사람은 그저 말이 잘 달릴 수 있도록 방향만 잡아주고 방해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대인께서는 반대로 하셨으니, 어찌 시합에서 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55쪽)

여기에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이렇다. 모든 일은 맹목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법이다. 한마디로 '불위이성'이다. <도덕경> 제24장에 나오는 기막힌 구절을 소개한다.

"발꿈치를 땅에 대지 않고 발돋움하면 오래 서 있지 못하고, 큰 걸음으로 걸으면 멀리 가지 못한다. 자기를 내세우면 부각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하면 드러나지 않는다. 공을 자랑하면 공도 없어지고, 혼자 우쭐대면 오래가지 못한다. 기자불립 企者不立 과자불행 跨者不行 자현자불명 自見者不明 자시자불창 自是者不彰 자벌자무공 自伐者無功 자긍자부장 自矜者不長" (207쪽)

어떤 경우든지 자신을 내세우지 말라는 금언이다. 요즘 세태는 이와는 정반대로 흘러간다. 서로 공을 다투고, 높은 지위를 탐한다. 그래서 세상은 나날이 시끄러워진다. 노자는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맹점과 한계를 칼날처럼 추궁한 것이다. 스스로 겸허하고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는 첩경이라 여긴 것이다.

공자의 수양법

<논어>의 '위령공 편'에 "허물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허물이다.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라는 구절이 나온다. 자신의 과오와 실수 혹은 죄과를 솔직 담백하게 인정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검찰에 잡혀가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일갈하는 고관대작들이 허다한 세상 아닌가. 군자와 소인의 차이가 거기 있다.

공자는 평생 네 가지를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것은 <논어> '자한 편'에 나온다.

"주관적인 추측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자기 견해를 고집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사물의 변화와 흐름을 따른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 의견도 공정하게 받아들인다. 자절사 子絶四 무의 毋意, 무필 毋必, 무고 毋固, 무아 毋我" (351쪽)

균형 잡힌 시각과 유연성, 상대방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하는 자신감과 당당함. 이런 자세야말로 단출한 고대보다 훨씬 복잡한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덕목 아닐까. 자아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세상과 자유자재로 소통하는 자세. 그리하여 공자는 나직하게 하지만 소름 끼치도록 신랄하게 말한다. 돈과 땅에 묶인 오늘의 우리를 푹 찔러오는 공자의 목소리.

"군자는 정의에서 깨닫고, 소인은 이익에서 깨닫는다. 군자유어의 君子喩於義 소인유어리 小人喩於利" (313쪽)

노자의 정치사상

'무위자연'의 주창자라 하여 노자를 현실정치와 무관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노자와 그의 사상을 올바르게 수용한 결과는 아닌 듯하다. <도덕경>에는 정치지도자의 기본자세와 치세의 방법론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도덕경> 제66장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구절을 소개한다.

"백성 위에 있고자 한다면 겸손한 말로 자신을 낮추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한다면, 백성 뒤에 서야 한다. 욕상민 欲上民 필이언하지 必以言下之 욕선민 欲先民 필이신후지 必以身後之" (173쪽)

지도자가 국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이토록 간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인민대중 위에 군림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아니라, 그들을 섬기고 배려하는 지도자의 모습 아닌가. 이미 2,500년 전에 정치의 본령을 통찰하였던 사상가의 면모가 약여(躍如)하다. 이런 구절과 만나면 대한민국의 민망하고 우쭐대는 숱한 정치가들이 줄줄이 다가온다.

<도덕경> 제3장의 "상사민 무지무욕(常使民 無知無欲)", 즉 "백성을 언제나 아는 것도 없고 욕심도 없게 만들라"(789쪽)는 구절로 인해 노자를 우민사상의 주창자로 오해하는 수가 있다. 하지만 노자의 핵심은 백성의 욕심을 최소로 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소박한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욕심이 백성을 타락과 방종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었다. 지도자도 지나친 지적 욕망을 버리고 소박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공자의 정치관

공자의 사상을 관류하는 핵심개념은 '충서(忠恕)'다. '서'를 먼저 풀어보면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 '안연 편')으로 표상된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으면 남에게도 베풀지 마라"는 뜻이다. 왜 그런가.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남들도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고 꺼리는 일은 남들 또한 싫어하고 꺼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291쪽)

'충'은 여기서 훨씬 멀리 나간다. "기욕립이립인(己欲立而立人) 기욕달이달인(己欲達而達人)" (<논어>, '옹야 편'). 풀이하자면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도 세우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 남도 통달하게 하라." '서'가 상대적으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를 내세운다면, '충'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활달한 기상과 실천의지를 내세운다고 할 것이다.

'충서'에 기초하여 공자는 명분을 유난히 강조하였다. 본보기를 하나 들어본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고,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다. 형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면 백성이 손발을 둘 곳이 없어지게 된다." (355쪽, <논어>, '자로 편')

유가에서 명분을 중시한 연유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으로 명분을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공자는 아주 간명하게 말한다. "군군(君君) 신신(臣臣) 부부(父父) 자자(子子)" (<논어>, '안연 편').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글을 마치면서

대한민국에서 노자는 물론 공자나 맹자도 시대착오적인 대상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어떤 강퍅한 중국학자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주장으로 혹세무민하기도 하였다. 바야흐로 백가쟁명, 백화제방의 시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국을 선두로 한 서양 이데올로기와 생활방식의 범람이 전통사상과 문화와 영혼을 파먹고 있다.

1446년 세종이 '한글'을 반포한 이후로도 우리의 주요한 문자와 언어생활은 한자와 한문에 기초하였다. 이른바 문학, 사학, 철학은 물론, 각종 공문서와 기록물은 한문으로 생산되고 보급되었다. 오늘날 한문이나 한자는 어떤 외국어보다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어렵다고 한다. 낡았다고 한다. 불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과연 그런가.

미래학자들 주장이 아니더라도 2030년 이전에 중국은 세계최강의 자리에 올라설 것이다. 그때 가서 우리 어린 것들은 다시 중국어와 한문과 한자 열풍에 시달려야 할 것인가. '아륀지'와 '어륀지' 사이에서 헤매는 어른들 등쌀에 등이 휘는 어린 것들에게 다시 돌을 던질 것인가. 유구한 문화전통과 속절없이 작별한 한 세대 이전의 혼란을 반복할 것인가.

<왼손에 노자 오른손에 공자>는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인도한다. 일찍이 등소평이 '흑묘백묘론'으로 일갈했듯이 그들은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필요하면 가져다 썼다. 이른바 실용의 핵심은 그런 것이다. 인민의 배를 불리는 데 이념이 중요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중국사상과 전통의 고갱이는 지키고 있다. 그것 일부를 이 서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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