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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데스크R]만주망명 110주년 기획1. 다시 돌아오리라!

◀ANC▶
올해는 석주 이상룡 선생 등이
만주로 망명한지 110주년 되는 해입니다.

'독립운동을 향한 망명 로드',
지난 1910년 석주 이상룡 선생 등
경북지역 독립투사들이 만주 망명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살펴봅니다.

이호영 기잡니다.
◀END▶


◀VCR▶
경술년인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점되자 의병 활동에 나섰던
경북지역 일부 투사들이 나라를 되찾는
독립운동을 펼치고자 만주 망명을 결심합니다.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
내앞 백하 김대락, 일송 김동삼 선생 등으로
이들은 학문과 혼반 등으로 연결된 문중과
인물이었습니다.

1910년 가을에 이들은
임청각이나 백하구려, 협동학교 등에 모여
서간도 지역 사전 답사와 문전옥답 처분 등
독립운동을 위한 만주 망명길을 준비합니다.

석주 유고에 선생은 제사비용과 어머니 생활비, 문중 진휼금을 제외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와 재산을 처분했다고 남겼습니다.

특히 노비문서를 태워 노비를 해방시키는 등
당시 사대부의 특권도 모두 버렸습니다.

◀INT▶김미영 박사/한국국학진흥원
"당시 가족과 문중 일원을 대동해서 가야했기
때문에 자칫 한 문중이 사라질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요.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 기약없는 여정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주 망명 후 석주 선생이 본명 '이상희'로
남긴 임청각 가옥 및 택지, 산판 매매 증서와
계약서를 보면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증서는 1913년, 선생이 만주에서 쓴 것으로
가옥은 당시 대금 900엔에,
택지와 산판은 100엔에 매매한다는 내용입니다.

◀INT▶한준호 부장/경북독립운동기념관
"이러한 만주 망명 결심은 나라를 빼앗긴 비극적 상황에서 장기지속적인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새로운 방략으로 국외 독립운동 근거지 구축을 구상한 것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1911년 1월 24일
내앞 백하 김대락과 그 가족이 만주로 떠났고,
10일 뒤, 석주 이상룡 선생도 독립운동을 향한
본격적인 망명의 길에 나섰습니다.

(S/S)석주 선생 등이 만주로 망명한 것은
1911년 1월의 일이었습니다.
올해가 꼭 110주년이 되는데요.
선생은 '다른 날 좋은 세상 되거든 다시 돌아오리라'라는 말을 남기고 이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MBC뉴스 이호영입니다.
이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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